매일신문

[20세기의 추억] (17)증기기관차

'별리와 상봉…' 철마는 늘 설렘이었다

① 전남 곡성군에서 관광용으로 운행하는
① 전남 곡성군에서 관광용으로 운행하는 '유사' 증기기관차. 기름보일러로 뿌연 연기를 만든 것이고 기관차 앞면은 증기기관차처럼 연통을 세워 위장했다. ② 곡성기차마을의 전시용 증기기관차 객실. 나무로 된 창문과 의자가 신기하다. ③ 곡성기차마을의 전시용 증기기관차 객차. 나무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재미가 있다. ④ 곡성기차마을의 증기기관차 기관사 김종선 씨. ⑤ 봉화군 도촌읍 도촌마을앞 건널목을 지키고 있는 장재웅 씨가 깃발로 신호를 하고 있다. ⑥ 1940년에 설치된 안동역 급수탑은 외부형태가 12각형으로 돼 있는게 특징이다. ⑦ 1939년에 설치된 추풍력역 급수탑은 외부형태가 사각형의 평면이다.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밤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었던 적은 없는가. 객차에 홀로 앉아 창문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밤 풍경을 실컷 바라보고 싶었던 때는 없는가. 젊은 시절 누구나 한번쯤 꿈꿔온 일이었지만 이를 시도해본 사람은 드물다. 일상사를 탈출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차는 누구에게나 향수를 자극하는 대상이다. 저 멀리 기적소리를 내며 달리는 기차를 한번 더 돌아보게 되는 것도 우리 가슴 저변에 깔린 추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옛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증기기관차

커다란 연통에서 뿜어나오는 시꺼먼 연기, '꽤액~ 꽤액'하는 시끄런 기적소리…. 한국에서 증기기관차가 없어진 때가 1967년이었으니 타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은 50대 이상이고 그 아래 세대는 영화 등에서나 봤을 뿐이다. 기계적인 느낌이 드는 디젤기관차보다는 다소 원시적인 증기기관차가 훨씬 더 향수를 짙게 한다.

현재 한국에서 증기기관차가 운행되는 곳은 없다. 지난 94년 철도청이 중국에서 증기기관차를 도입해 관광용으로 서울교외선(서울~의정부)에서 운행했으나 2004년 중단했다.

그렇지만 전남 곡성군 구 곡성역에 가면 '유사' 증기기관차를 타 볼 수 있다. 정면에 커다란 연통을 만들어놓고 출발 때는 뿌연 연기를 내뿜어 얼핏 증기기관차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디젤기관차다. 기관실에서 기름보일러로 연기를 만들고 앞 형태만 증기기관차처럼 위장했다. 군 관계자는 "2년 전 개통할 때 실제 증기기관차를 제작하려 했지만 200억 원이 넘게 들어 '유사' 증기기관차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제작비용은 12억 원. 역사도 1933년에 지어진 것을 그대로 사용해 제법 운치를 더해 준다.

구 곡성역에서 가정역까지 전라선 폐선 10㎞구간을 왕복하는 데 1시간 정도 걸린다. 기관차 2량과 객차 3량으로 구성된 '증기기관차'는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20~25㎞ 속도로 천천히 달린다. 1899년 경인선 개통 당시 증기기관차 속도가 이 정도였다고 하는데 달리는 기차 안에서 뛰어내려도 괜찮을 듯했다.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섬진강 풍경은 그리 화려하지 않지만 호젓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줬다.

기관사 김종선(54) 씨는 "주말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 추가 운행을 자주 한다."면서 "어른들은 옛추억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고, 아이들은 만화영화 '꼬마기관차 토마스와 친구들' 때문에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기관차 정면에는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미카3 129'라는 모델명을 써붙여 놓았다.

◆급수탑과 유인 건널목

경북 안동역, 영천역 한쪽에 커다란 탑이 높게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얼핏 보면 기념탑 비슷하게 보이지만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급수탑이다. 증기기관차가 역에 설 때마다 긴 호스를 통해 기관차에 물을 공급했다고 한다. 현재 전국에서 7개의 급수탑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을 정도로 보존 가치가 높다.

1940년에 만들어진 안동역 급수탑은 외부 형태가 12각형으로 독특하고 기계실 천장이 돔형으로 돼 있는 게 특징이다. 남재은 영업팀 차장은 "아직도 급수탑에서 펌프로 물을 퍼올려 허드렛물로 사용한다."고 했다.

영천역 급수탑과 추풍령역 급수탑은 현재 사용되지는 않지만 벽면에 6·25전쟁 당시 총탄의 흔적이 있어 의미를 더해 준다. 영천역 급수탑은 1937년 설치될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추풍령역 급수탑은 1939년 설치 때 사각형의 평면 모델을 채택한 게 흥미롭다. 추풍령역 김대곤(46) 역장은 "급수탑 벽면 곳곳에 금이 가 있고 콘크리트 일부가 떨어져 나가 보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철로 건널목지기도 점차 사라져가는 직업 중 하나다. 차단기 앞에서 하얀 깃발을 흔들고 서있는 철로원의 모습은 이제 보기 힘든 풍경이 됐다. 농촌 도로에서는 유인 건널목이 아직도 있지만 대도시에서는 거의 모습을 감췄다. 건널목마다 '지장물 탐지기'가 설치되고 차단기가 내려오는 등 자동화됐기 때문이다.

경북 봉화군 도촌읍 도촌 건널목지기 장재웅(64) 씨는 "하루종일 건널목을 지키고 있으면 한가롭기도 하지만 행인과 차량들을 도와줄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면서 "1년 후에 퇴직을 하게 돼 좀 아쉽다."고 했다.

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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