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잉글랜드 축구리포트)개고기 먹는 나라의 박지성?

신사의 나라 비신사적 응원

'개고기 송'이 박지성의 응원가로 완전히 자리잡은 것 같다. 지난 미들즈브러와의 홈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은 부상으로 결장한 박지성을 그리워하며 또 다시 이 노래를 불렀다. "파크(Park), 파크 네가 어디에 있든, 너희 나라에서는 개고기를 먹지. 하지만 시청에서 쥐를 잡아먹는 스카우스(Scouse)가 되면 그것은 최악이지."

'스카우스'는 리버풀 사람들을 부르는 속어다. '시청에서 쥐를 잡아먹는다'는 표현은 최근 심각한 리버풀의 실업난을 비아냥대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개고기와 인종 차별에 주목했지만, 맨유팬들에게 이 노래의 요지는 사실 '반(反) 리버풀'이다.

맨유의 응원에는 유독 리버풀에 대한 비난이 자주 등장한다.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고, 산업 혁명 이후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성장했다는 유사한 사회적 배경 때문에 맨체스터와 리버풀 시민들은 서로에 대한 오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양 팀 간의 경기도 지역 라이벌전을 뜻하는 '더비'로 부른다. '레드(리버풀)'와 '레드 데블스(붉은 악마, 맨유)'의 싸움, '레드 더비'가 그것이다.

안필드 구장과 올드 트래포드 구장에서 열렸던 레드 더비에 다녀온 앤디 미튼 기자가 축구잡지 '포포투(FourFourTwo)'에 기고한 글을 보니 레드 더비가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양 팀 서포터들이 내뱉는 응원 구호의 유치함에 있는 것 같다. '개고기 송'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서로를 자극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이든 한다.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 경력을 내세우며 리버풀 팬이 "우리는 이스탄불에서 5번 이겼어"라고 외치면, 맨유 팬들은 "우리는 아무도 죽이지 않고 거기에서 2번 이겼어"라고 받아치며 리버풀 팬들의 잦은 난동을 비꼰다. 이어 "살인자, 살인자"라며 몰아 부친다. 리버풀 출신인 웨인 루니는 시트콤 '오스틴 파워'에 등장한 뚱뚱하고 못생긴 괴물같은 캐릭터로 불리는 수모도 감내해야 한다. "리버풀, 문화의 도시, 웃기네"나 "오, 맨체스터, 똥으로 가득찬 도시"정도의 지역 비하는 수위가 낮은 편이다.

이들은 상대 지역이 처한 사회 문제도 건드린다. 맨체스터에서는 최근 빈집털이 범죄가 잉글랜드 평균보다 세 배나 많을 정도로 심각하다. 이를 두고 리버풀 팬들은 축구장에 가면 "맨체스터 집에 도둑 들었어"라고 외친다. 맨유 팬들은 리버풀 팬들을 향해 "넌 절대 취직 못해"라고 악담을 퍼붓는다. 가뜩이나 높은 실업률 때문에 고민하는 리버풀을 생각하면 정말 짖궂다. 이쯤 되면 잉글랜드 축구장이 대표적인 '신사의 나라의 열외 지역'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박근영(축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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