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말발' 좀 세워보자…대구 스피치학원 '불야성'

목사·스님도 등록…수강생 30%나 껑충

▲ TV 오락프로에서조차
▲ TV 오락프로에서조차 '말발' 있는 연예인들이 대접을 받으면서 스피치학원에서 화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강의실을 가득 메운 대구시내 한 스피치학원.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맞짱토론'이 유행이다. 기자실 통폐합을 놓고 대통령과 언론단체 간 맞짱토론이 예고되어 있고, 대선 경선후보자들 간 맞짱토론도 잇따르는 등 '토론 전성시대'다. 직장인과 공무원들조차도 혁신사례 발표에서 다면평가에 이르기까지 말을 잘하면 유능하고 말을 못하면 무능한 사람으로 '찍히는' 세상이다. 이 때문에 '막강 말발'을 배우려고 스피치학원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관계기사 11면

지난 15일 오후 7시 30분. 대구시 수성구의 한 스피치학원. 40여 석의 강의실이 가득 찼다. 중학생에서부터 20대 남녀 대학생, 30대 직장인, 40대 가정주부, 50대 자영업자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강의실은 강사와 수강생들이 차례로 질러대는 고성에 금세 파묻혀버렸다.

이 학원 관계자는 "1, 2년 전부터 공무원, 교사, 회사원 외에 학생과 주부들의 등록도 꾸준히 늘고 있다."며 "올해 들어서는 수강생이 지난해보다도 30% 정도 늘어난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또 "요즘 화술을 배우려는 사람들 중엔 공무원과 시도의원뿐 아니라 사회단체의 고위직 회원, 약사, 의사, 각종 이익단체의 회장도 있다."면서 "심지어 목사와 스님까지 스피치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룹강의보다는 1대 1 개인과외를 받기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개월에 100만 원가량의 수강료를 부담해서라도 스피치 과외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숨길 만큼 주변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

프레젠테이션이 강조되면서 공무원이나 회사원들의 수강도 꾸준히 늘고 있다. 정경희(40·여) 씨는 "긴장을 하면 목소리가 떨려서 발표를 잘 할 수가 없다."며 "연단에만 서면 미리 연습을 하고 준비한 말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고민끝에 등록했다."고 말했다.

예전의 웅변학원이 연설의 테크닉만 가르쳤다면 요즘 스피치학원은 화술은 물론이고 대인관계와 성격개조, 웃음치료까지 병행하는 종합학원이다.

나서기가 두려워 여자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었다는 신준우(24) 씨는 이제는 처음 보는 여자라도 붙잡고 마구 말을 하고 싶어질 만큼 변했다고 스스로를 진단했다. 조승현(24) 씨도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고등학교 때까지 많은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며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스피치학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한 주부는 성당에서 개최하는 독서토론회에서 발표하는 것이 두려워 학원을 찾았다. 김순복(41·여) 씨는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잔소리가 심했는데 요즘은 남편을 격려하는 내 모습에 나도 모르게 깜짝깜짝 놀란다."며 "스피치를 배우고 나서 나도 모르게 긍정적인 사고로 바뀌었다."고 했다.

스피치강사 박유남(54) 씨는 "이때까지의 국어교육은 읽고 쓰고 듣는 교육이 위주였다."며 "이제는 말하기 교육의 비중을 높이는 방안도 고려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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