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에 위치한 평화로운 바닷가, '가천'이란 마을에 가보고 싶다고 노래처럼 말한 지가 일 년이 지나 어렵사리 시간을 냈다. 일상생활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역의 정경과 사람들을 만나고 가다 쉬기를 반복하며 그 마을을 경유해 남해를 휘 돌아올 계획이었다.
우선 지도를 앞세워 가천마을을 찾아가겠지만 마음이 내키는 대로 도중에서 쉬었다 가면 어떻고 또 길을 잘못 들어 다른 곳에 닿은들 어떠랴. 그런 내 뜻을 충분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남편은 무언가에 쫓기듯 목적지를 향해 시간까지 어림계산을 해가며 찻길을 내달렸다.
달리는 길목 신작로 옆에 징검다리가 놓인 개울이 있어 내려가 보자면 저런 냇물은 우리 시골집 앞 '거랑'보다 못해서 내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어느 마을 감자작목반의 판매대가 미루나무 아래 차려져 있어 내려서 좀 사가자는 말에도 많지 않은 식구에 그 중 제일 먹성 좋은 아들놈마저 입대해버린 판에 사다 놓고 썩힌다며 안 된단다.
틀린 말은 아니다. 목표를 정하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외곬인데다 앞으로만 내달렸지 여유를 부릴 줄 모르는 성미다. 삭막해진 마음을 쓸어주지 못해 오히려 미안했다. 모두가 생업에서 익숙해진 습관이려니, 죄 없는 내 가슴만 쥐어박았다.
허겁지겁 가천마을에 들러 사진 몇 컷 찍고 나오긴 했다. 벌건 저녁노을이 차창으로 꽤 오래도록 보이는가 싶었는데, 해 떨어지기가 무섭게 차는 어느새 충무 어시장으로 찾아들었다. 오호라 애주가 양반 오월동주(吳越同舟)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더니 말이 없던 동안 혼자서 딴생각을 했었던 게로구나.
질펀한 남도 토박이말이 귀청을 울리는 횟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할애했고, 하루이틀 더 여유를 부려도 좋을 계획을 했건만 그날 밤 집까지 돌아오고야 말았다. '장난 삼아 던진 돌에 개구리는 목숨을 잃는다'는 말이 있듯이,
무심결에 한 언행이 경우에 따라선 상대의 마음에 적지 않은 상처를 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나 남편의 생각이 나와 같지 않았다거나 일방적으로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타박하고 싶지는 않다. 재미없고 무뚝뚝하기로 정평이 난 대다수의 경상도 남편들이여, 이 같은 경우에도 '한 일 년 더 별러서 다시 가 보리라'는 아낙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 둘지어다. 다음엔 혼자서 가봐야 할까 보다….
김정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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