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이야기다. 교사들 몇 명이서 외국 여행을 갔다. 입국 수속을 받을 때 몇 명은 영어 교사 뒤에 섰다. 소수 몇 명은 외국을 자주 다닌 운동부 지도 교사 뒤에 섰다. 말이 안 통하는 교사 쪽은 단어를 내뱉어 먼저 통과하였다. 반면, 영어 교사 쪽은 문장을 생각하느라 한참 걸려서 겨우 나왔다.
'I am a book'을 '아이 엠 어 부크'라고 하던 해방 직후 세대 영어 교사는 문법 위주의 교육을 받았고, 문법 위주의 수업을 하였다. 그러니, 영어로 의사 소통이 될 턱이 없었다.
요즘 학교 교실에서는 미국 캐나다 등 영어권 학교 교환 학생 프로그램에 다녀온 학생, 부모를 따라 외국에서 수학하다 온 학생, 어학 연수를 다녀온 학생 등 현지 영어를 익히고 돌아온 학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외국을 다녀오지 않은 학생들도 TV 등을 통해 외국의 문화·풍토에 대해 많이 안다.
그러니 이들 앞에 선 영어 교사는 난감하기 짝이 없다. 발음은 현지에서 배운 학생들과 비교할 수조차 없다. 외국 문화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채 전달하는 내용은 학생들에게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최근 임용된 교사들은 회화 능력을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임용 시험을 거쳤기 때문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지만, 오래 전에 대학교육을 받은 분, 어학 연수 경험도 없는 분들은 매 시간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의사 소통 능력을 갖춘 교사들도 독해 위주의 교실에서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킬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유지하기조차 어려울지 모른다. 교실에서 쓸 수 있는 단어나 문장 수준 때문에 그렇고, 수능 중심의 문제 풀이 수업을 해야 할 현실 때문에 그렇다.
언어 구사 능력이란 활용하지 않으면 곧 쇠퇴해버리는 특징이 있다. 교직 생활 2, 3년이면 지니고 있던 능력마저 잃어버리게 될지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교육패러다임은 소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2015년부터 영어로만 수업하게 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니, 영어 교사 재교육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많은 교사들은 재교육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여기에 영어 교사의 고민이 있다. 교육청 주관 연수에서도 소수의 열성적인 교사들은 여러 종류의 연수에 모두 참여하기를 희망하지만, 많은 분들은 연수 참여에 다소 소극적인 면이 있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재교육의 시기나 방법 등이 만족스럽지 않은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어떡할까. 현재의 어려움은 향후 교실에서 겪게 될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텐데. 힘들더라도 자기 연찬에 힘쓰고, 기회를 만들어 새로운 교수 기법, 새로운 문화 습득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음을 상기할 수밖에.
박정곤(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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