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말과 글이 흐르는 풍경)보현산 상수리나무가 보낸 메일

영일만 쪽에서 들리는 해님의 헛기침 소리에 늦잠에서 깨어났습니다. 5월인데도 으스스 춥습니다. 지난밤의 별 잔치도 참 대단했습니다. 외계의 별에서 처음 왔다는 요정들의 춤과 노래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독한 술에 취하듯 그 노래와 춤에 취해 즐기다 새벽녘에야 눈을 붙였으니까요. 해님은 벌써 중천에 올라 맑고 밝은 빛으로 신록의 산천을 색칠합니다. 남서쪽으로 팔공산 줄기가 출렁이고 또 북쪽으로 주왕산이 고개를 내밉니다.

실개천의 피라미 떼처럼, 대구 포항 간 고속국도를 헤엄치는 차들이 유달리 많은 걸 보니 오늘이 휴일인가 봅니다. 북영천 IC를 빠져나와 이쪽으로 핸들을 꺾는 차들은 보나마나 노귀재를 넘어 청송으로 가거나 아니면 이곳 보현산으로 옵니다.

오늘 같은 휴일에는 천문대에서 근무하는 연구원 이 씨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십여 년 전 대학시절, 이곳으로 등산을 와 며칠을 지내면서 밤마다 벌어지는 별들의 축제에 넋을 잃었다는, 그래서 하던 경영학 공부를 때려치우고 천문학 공부를 시작했다는 이씨는 서른을 훨씬 넘긴 노총각입니다. 별의 요정들이 선물한 망토를 걸치고 모자를 쓰고 구두를 신은 채 벌써부터 관람객을 몰고 다닙니다.

천체관측소 안에서 이 씨의 너털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니, 오늘도 이 씨와 관람객 사이에 황토물이 흐르는 게 분명합니다. 이 씨가 침을 튀기며 별에 대한 별의별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관람객들은 늘 별과는 별 상관이 없는 별의별 질문을 해대니까요.

별 공부를 해서 대체 어디에 쓰느냐? 보수는 얼마나 받느냐? 고것 받아서 어떻게 살아가느냐? 이 공부를 끝내면 어디에 취직할 수 있느냐? 장가도 안 가고 별 공부하는 데 대해 부모님은 별 걱정을 안 하시느냐? 새로 발행된 만 원짜리 지폐에 들어있다는 1.8m광학망원경이 어느 것이냐? 그 망원경의 값은 얼마냐?…등등등.

몰고 온 차를 되돌려 꼬불꼬불 더듬더듬 산을 내려가는 사람들을 향해 이 씨가 손을 흔들며 중얼거립니다. 진짜 별들의 잔치에 한 번 참석해 보시면 당신들도 생각이 바뀔 거라고. 망개나무 달피나무들이 이 씨의 어깨에 손은 얹고 하산하는 차 꽁무니를 쫓습니다. 측은하고도 불쌍한 사람들. 한 번만, 단 한 번만이라도 이 보현산 꼭대기에서 밤마다 벌어지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별 축제에 와 본다면, 별들의 이야기에 귀를 적신다면, 저들도 돈, 돈, 돈이 아니라 별, 별, 별을 입에 달고 다닐 텐데.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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