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슈 포럼] 짝퉁 '비정규직보호법'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인 소득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근로자에게 일자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노동을 통하여 근로자는 인간으로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직업을 자유로이 선택하여 공정하고 유리한 근로조건을 확보함과 아울러 실업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선언하고 있다. 우리 헌법도 국민에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고, 국가는 국민에게 사회적 · 경제적인 방법으로 고용을 증진하고 적정한 임금이 보장되도록 노력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합리적인 '차이'는 인정하지만 부당한 '차별'은 금지되어야 한다. 차별은 비인권적이다.

1996년 말 노동계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의 경영합리화 요구에 따라 정리해고제가 도입됨과 함께 '파견근로자 등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IMF 이후 기업에서 정리해고당한 근로자들이 비정규직인 파견근로자로 노동시장에 등장함에 따라 이들의 보호문제가 제기되었다. 하나의 사업장에서 파견근로자와 정규직근로자 사이에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별과 불법적인 근로자파견이 자행됨으로써 이 법률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정부 산하의 공공기관마저 불법파견근로를 자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KTX 여승무원사태이다. 또한 사용자의 근로계약의 유연화 요구에 따라 지난 해 제정되어 이번 달부터 시행되고 있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등 보호에 관한 법률'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에게 정규직 근로자와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소극적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당위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 법률이 시행되기도 전에 탈법 내지 불법적으로 직종을 구분하여 업종을 나누거나 업무를 전환시키거나 아예 차별시정을 주장할 만한 근로자들을 해고하는 경향마저 발생하여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최근 이랜드계열사인 뉴코아사태나 홈에버사태가 이를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다.

비정규직보호법은 그 명칭이 말해 주듯이 비정규직 근로자의 차별을 금지하고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함으로써 일자리를 보장하고 이들의 생존권을 보호하는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비정규직보호법률들은 형식상으로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차별을 금지하고 이들을 2년 이상 사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하여 이들을 보호하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질상으로는 한번 비정규직의 나락으로 떨어지면 정규직 근로자로 전환되기가 어렵다. 사용자들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사용함으로써 인건비 절감이라는 단맛을 보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정규직 근로자마저도 비정규직화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법률들이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이들을 손쉽게 해고할 수 있고 정규직 근로자마저도 비정규직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하는 짝퉁 '비정규직보호법'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비정규직보호법이 그 본래의 목적과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노동부의 철저한 감독행정, 노동위원회의 적극적인 차별시정조치 및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취업촉진조치가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노동부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확산을 사전에 방지하고 차별이 자행되지 않도록 철저한 감독행정을 펴야 함과 아울러 이들의 정규직화를 위하여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 노동위원회는 이들에 대한 부당한 해고와 차별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구제하고 시정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도 이들의 취업촉진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동시장에 개입하여 장 · 단기적인 인력수급에 관한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왜냐하면 현대국가의 존립목적은 경제적 ·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 보장에 있기 때문이다. 기업도 이들에 대한 의식을 전환해야 한다. 기업이 비정규직으로 운영되면 단기적으로는 경비가 절감되어 이윤이 증대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노하우가 축적될 수 없어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저렴한 인건비에 현혹된 무분별한 비정규직 사용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현행 짝퉁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돼 2년 뒤 2009년 5 · 6월경에 이들이 집단으로 정규직 근로자로의 전환을 주장하면 우리 사회가 엄청난 소용돌이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진정으로 우리 사회의 화두인 소득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명품 '비정규직권리보장법'으로의 개정을 촉구한다.

김교숙 부산외국어대학교 법과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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