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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이중기 作 '씁쓸한 누추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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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누추함이여

이중기

홈실댁은 아연 경지에 닿아버렸다

먼 나라 참깨 콩 고추 사다 집에 것과 섞어

강호의 뭇 고수들 몰려오는 영천장 가서

손수 지은 농사라고 내놓은 난전이 발칙하다

대번에 신원조회 끝내버린 일급 고수들

중국 물로 지었소? 어째 좀 그렇소, 하면

이 양반이 되놈 접방 살았나

조선팔도 황사바람 안 분데 어디 있던기요

촌 할마이 농사라고 깔보지 마소

그딴 값에 넘기고 손 털기엔 내가 너무 젊소

더러는 눌변으로 발칙한 세상사를 혀 차는

저 할마시 뒷모습이 갸륵하다

그러나 나는 저 사람 가계를 안다

함부로 눈 흘기지 못할 누추함이여

육두문자 끝에 터지는 서러운 파안이여

등 뒤에는 실직한 아들 둘이 범 아가리보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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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중기 시인. 우리가 흑염소 한 마리 잡아 시집 출판기념회 열었던 때가 언제였지? 맞아, 벌써 10여 년이 덧없이 흘러갔구먼. 대파 썸덩썸덩 썰어 넣고 뜨거운 국물 훅훅 불어가며 하루를 보냈던 그해 여름.

생각 없이 나는 아궁이에 불붙은 장작에서 장미꽃 향내가 난다며 좋아라 했지. 그 장작이 지난봄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과수원에서 파낸 능금나무인 줄도 모르고 말이야.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어 어금니를 악물고 파내야 했을 능금나무. 능금나무를 베어내고 심은 복숭아나무도 이태 만에 다시 파내야 했다고 했지.

새로 심은 포도나무에서는 농비(農費)가 제대로 나오는지 모르겠구먼. 몇 달 전 티브이에서 봤던 붉은 머리띠 매고 구호를 외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삼삼한데. 어쩔거나, 세상은 미친 소처럼 길길이 날뛰는데 그 순박한 심성으로 어찌?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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