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문학을 전공하는 필자는 번역 관계로 만나게 되는 출판사 같은 곳에서 밉상을 받기 십상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수도인 '파리'(Paris)를 '빠리'라고 적기 때문인데, 이 철자가 국어학자들이 지정해 준 철자법에 맞지 않아 사람들은 필자에게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주로 고유명사의 발음이 문제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경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사용하기 꺼리는 데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쌀'이나 '까마귀' '까치' '짜다' 같은 경우도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국어사전 같은 데서는 '파리'로 적도록 하고 있고, 그 외의 경우에는 해당 국어의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적도록 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될 수 있으면 경음을 피한다. 예를 들어 '응접실'을 나타내는 'salon'이란 프랑스 단어를 원어 발음에 가깝게 '쌀롱'이라 하지 않고 '살롱'이라 적는다. 배우 전도연 씨가 올해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제로 유명한 도시 깐느도 '칸'이라 적는다. '꼬냑'은 '코냑'으로, '니꼴라'는 '니콜라'로 말이다.
우리 국어가 훌륭하고 음운이 풍부하다는 증거는 프랑스어 발음에서도 나타난다. 제대로 배운 우리나라 여학생들이 프랑스어를 발음하는 것을 보면 제 나라 말을 잘못 익힌 프랑스 사람들보다 나은 경우가 많고 듣기도 좋다.
프랑스어 발음 철자 문제는 경음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한글 독음에서도 나타난다.
지금은 받침으로밖에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옛날에는 초성으로도 사용했던 'ㅀ'이 있다. 이 음을 초성으로 사용하여 파리도 '빠ㅀl'로 발음한다면 프랑스어 'Paris'에 매우 가까운 발음이 되는데, 이 문제는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필자의 집 근처 가게 이름이 '사바비엔'이란 곳이 있다. 평소 무심코 지나치다 도대체 국적을 알 수 없는 이 단어가 무엇인지 호기심이 생겨 발음을 해보니 프랑스어 단어들이었다. 'Ca va bien', 즉 '잘 지낸다.'는 뜻을 가진 '싸 바 비엥'이었다.
프랑스어문학 전공자로서는 기가 막힌 일이었지만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깐느'의 '칸'도 필자에게는 옛 몽골 쪽의 가한을 지칭하는 것 같다. 프랑스어 발음 철자는 우리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왜 우리의 풍부한 독음을 잘 이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외국어 철자법에 있어 너무 경직된 사고를 가진 것은 아닌지….
백찬욱(영남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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