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뜨기 우룽이 석탄 운송 열차를 타고 중국 중소도시 청베이에 도착한다. 고향마을이 홍수에 잠기자 먹고살기 위해 도시로 나온 것이다. 우룽은 부두에서 하역한 쌀 구루마를 따라 와장가로 들어선다. 그는 와장가에서 잘 나가는 '대홍기 쌀집' 일꾼으로 들어간다. '밥만 먹여주면 잠은 서서 자도 좋다.'는 조건으로 취직한 것이다. 쌀집에는 두 딸이 있는데, 쯔윈은 열 아홉 살이고, 치윈은 열일곱 살이다.
우룽은 착한 인간이 아니지만 악독한 인간도 아니었다. 첫째 딸 쯔윈은 바람둥이이기는 하지만 나쁜 여자는 아니었다. 둘째 딸 치윈은 억척스럽게 일하는 여자였다. 두 딸의 아버지이자 대홍기 쌀집의 주인인 펑사장 역시 욕심이 있을 뿐 나쁜 인간은 아니었다.
이들은 함께 어울려 살면서 악랄한 인간으로 변해간다. 각자의 사소한 잘못은 상대의 복수심을 부르고,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각자는 할 수 있는 한 악독한 짓을 행한다. 또한 괴롭힐 수 있는 한 상대를 괴롭힌다. 우룽은 대홍기 쌀집의 큰딸 쯔윈과 결혼하고, 헤어지고, 억지 끝에 치윈과 결혼해 아들딸을 낳는다.
쯔윈과 치윈의 아버지인 펑사장은 중풍으로 죽기 전 사위 우룽을 침대 앞으로 불러 앉힌다. 그가 살아서 마지막으로 한 일은 손가락에 한껏 힘을 모아 사위의 눈을 찌른 일이다. 할 수 있었다면 눈이 아니라 목을 잘랐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우룽과 치윈이 낳은 아들 딸 역시 개망나니로 살아간다. 큰아들은 여동생을 죽인다. 큰며느리는 식구들이 먹을 아침에 독약을 타놓고 도망쳐 창녀가 된다. 나이가 든 우룽은 자신이 증오했던 조직폭력배가 돼 온갖 악행을 일삼는다. 하루 세끼만 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던 우룽이 배신자로, 악의 화신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우룽 뿐만 아니다. 등장인물은 모두 악인이며, 장소는 어디나 지옥이다. 인물들은 단지 '조금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졌을 뿐인데, 그들의 행동과 말은 악의 정수에 다름 아니다. 이는 가난한 세월을 살았던 사람들의 운명이기도 하다.
중국 소설은 어딘지 모르게 시끄럽다. 왠지 모를 잡음과 고함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더불어 어딘지 모르게 독자를 기분 나쁘게 한다. 소설 속 배경과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추잡하고, 이해하기 힘들고, 위험하다. 쑤퉁의 소설 '쌀'은 이런 중국소설의 분위기를 집대성하고 강화했다는 느낌이다. 정말이지 기분 나쁘고,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소설이 억지로 괴기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은 아니다. 그저 좀 악독한 인간 군상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렸을 뿐이다. 소설이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처럼 보이기 때문에 더욱 기분 나쁘다.
이 소설은 성악설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중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7년 간 '상영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 대홍기 쌀집이 있는 와장가는 문명화된 도시를 상징하고, 쌀은 물질을 상징한다. '밥만 먹여달라. 잠은 서서 자도 좋다.'고 말했던 쑤퉁은 밥을 넘어 엄청난 돈을 모으지만 영혼은 썩어가고, 육신은 망가지고 문드러진다. 눈을 잃고 발가락을 잃고, 급기야 성병으로 몸뚱이는 피고름 주머니가 된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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