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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성장동력 E-클러스터] ②유럽의 신재생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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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도시에 불어넣은 새생명

1998년 '고한·사북 지역 살리기' 투쟁으로 강원도 정선 일대가 들끓었다. 석탄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이 지역 광산이 잇따라 닫히자 광부들은 새로운 일터가 필요했다. 지역경제는 금세 얼어붙었고, 광부들의 사택이 흉가로 변하면서 이곳을 유일한 터전으로 믿던 주민들은 기찻길까지 막으며 거세게 항의했다. 결국 주민들은 다른 지역이라면 꺼려 마지않는 핵폐기물·산업폐기물 처리시설은 물론, 교도소 등 혐오시설까지 유치하겠다고 했다.

소요의 결과로 주민들이 약속받은 것은 카지노산업이었다. 과연 카지노가 이 지역의 새로운 희망이 되었을까? 2000년 강원랜드에서 스몰카지노가 운영됐지만 일거리를 기대한 주민들의 바람은 충족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지역엔 대박을 꿈꾸다 거덜난 초췌한 졸부들, 길가에 셀 수 없이 늘어선 전당포만이 생겼을 뿐이었다.

탄광도시가 내리막길을 걸은 것은 세계적 현상이었다. 똑같은 일이 닥친 독일 루르공업지대는 어떠했을까. 물론 '라인강의 기적'을 일군 이곳도 우리와 같은 이유로 탄광이 하나둘 문을 닫고 환경과 실업문제를 낳았다.

그러나 독일인의 대처방식은 우리와 달랐다. 손충렬 인하대 교수는 "수많은 석탄가공시설과 제철소를 그냥 버리지 않고, 어떻게 하면 미래지향적인 산업과 연계할 수 있을까 고심한 독일인들의 대담한 발상과 세상을 멀리 내다보는 혜안을 우리도 배워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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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을 일군 우리에게 독일 서북부 지역에 위치한 루르공업지대는 친숙한 이름이다. 인구가 조밀하고 탄광이 많으며 철강을 비롯한 독일 중공업의 중심지를 이뤘던 이곳은 '라인강의 기적'의 원동력이 됐던 곳.

하지만 요즘 독일인들에게 Ruhr(루르)에 대해 물어보면 대부분 신재생에너지를 떠올린다. 이미 이곳은 예전의 석탄과 철강 주산지가 아니라 독일 신재생에너지를 이끄는 상징으로 변했다.

변신은 1980, 90년대를 거치면서 석탄 수요가 급격히 줄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폐광과 문을 닫은 제철공장은 태양광·풍력발전 관련 제조업체와 연구소 등으로 다시 문을 열었고, 이 지역에 즐비했던 화력발전소는 리모델링을 거쳐 각종 신재생에너지 발전소로 바뀌었다.

지난달 19일 찾은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주의 작은 도시 겔젠키르헨 도심에 위치한 사이언스파크. 1996년 태양광 집열판 900개, 연간 14만㎾h의 전기를 생산하는 등 당시 세계 최대 태양광발전시설이 이 건물 지붕에 놓이면서 독일 신재생에너지의 출발점이 된 이곳은 원래 1920년 초 지어진 티슨제철공장 자리였다.

1980년대 이후 한국 등 아시아 신흥국가들에 가격경쟁에서 밀리면서 이 지역 제철공장들이 연쇄적으로 문을 닫았고 티슨제철공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회사는 건물을 시에 기증했고 시정부는 이 거대한 건물을 어떻게 처분하면 좋을지 머리를 싸매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시당국은 공장을 부수고 골프장을 건설하거나 땅장사를 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다.

겔젠키르헨 사이언스파크 볼프 본 파벡 씨는 "당시 독일 정부는 이 지역 공장에서 쏟아져나온 실업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됐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다 신재생에너지로 눈을 돌리게 됐다."며 "오랜 탄광 및 철강산업의 경험을 통해 축적된 공해방지기술을 축으로 한 환경관련산업이 루르지역의 새로운 돌파구가 됐다."고 말했다.

건물 외벽이 모두 유리로 뒤덮이고, 지붕과 벽면 일부는 3천185개의 태양광 집열판으로 둘러싸인 인근 헤르네시 몽트-세니스 아카데미도 비슷한 운명을 거쳤다. 1999년 완공될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인 1㎿를 생산할 수 있는 태양광 발전시설을 갖춘 이 건물도 전신은 탄광이었다.

몽트-세니스 탄광도 1875년부터 1978년까지 지하에서 석탄을 캐며 독일 경제를 이끄는 엔진 노릇을 했지만 80년대 들면서 사망선고를 받았다. 탄광회사는 문을 닫고 사람들은 떠났다. 이내 폐광은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땅이 됐다. 헤르네시는 폐광을 다시 살릴 방안을 연구하다 처음엔 대형마트를 계획했으나 친환경 콘셉트로 수정했다.

1억 2천50만 도이치마르크(약 750억 원)를 들여 건립된 신재생에너지 아카데미는 한 해 600여 개 세미나가 열리고 1만 2천여 명의 방문객이 다녀가는 전 세계 신재생에너지 전문교육의 장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인근엔 300가구가 모여 사는 신도시가 형성됐다.

몽트-세니스 아카데미의 한 책임연구원은 "헤르네, 겔젠키르헨, 뒤스부르크 등의 대탄전지대를 중심으로 유럽 최대의 공업단지였던 루르지역은 20년 전 사양길에 오른 석탄산업을 대체하는 산업으로 신재생에너지를 일찍이 선택했다."며 "이후 NRW주에는 폐광과 폐제철소를 대신해 신재생에너지 제조업체만 200여 개가 생겼고 신규 고용효과도 4만여 명에 이르는 등 신재생에너지 메카로 제2의 황금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겔젠키르헨·헤르네에서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 사이언스파크 패트릭 유터만

독일 루르지역에는 '태양 삼각지대'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겔젠키르헨 사이언스파크, 미국 석유회사 셸이 만든 광전지 생산공장, 그리고 인근 헤르네에 있는 몽트-세니스 아카데미가 삼각형의 세 꼭짓점이다.

겔젠키르헨 사이언스파크 패트릭 유터만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 매니저는 "사이언스파크와 몽트-세니스 아카데미에는 100여 명의 연구원이 효율 높은 태양광전지를 만들기 위해 일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연구된 기술은 인근의 광전지 생산공장에서 활용된다."며 "태양 삼각지대는 태양광발전 기술 및 이를 산업과 실생활에 접목시키는 방안을 연구하는 태양에너지 연구의 메카"라고 했다.

독일 석탄산업의 중심지였던 이곳이 태양광 산업의 메카로 거듭난 이유는 뭘까?

"1970, 80년대 들면서 루르지역 석탄과 철강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어요. 많은 탄광과 제철소가 문을 닫았죠. 여기서 쏟아져나온 실업자는 당시 심각한 사회문제였어요. 수십 년 동안 독일 정부가 이 지역을 회생시킬 방안을 찾다가 신재생에너지라는 해법을 찾았지요."

유터만 씨는 "독일 정부는 엠덴을 중심으로 한 북부 독일은 바람이 좋은 입지조건을 활용해 대규모 풍력단지로, 일조량이 많은 남부 독일은 프라이부르크 같은 태양광 도시로, 그 가운데 위치한 NRW주(루르지역)는 풍부한 석탄가공시설과 제철소를 활용해 신재생에너지 관련 생산공장을 많이 유치하는 등 역할을 분담했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에만 신재생에너지 관련 제조업체가 200여 개쯤 됩니다. 이곳에 종사하는 근로자 수만 4만여 명에 이르고 있지요. 석탄 수요 급감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침체됐던 이 지역이 지금은 신재생에너지로 인해 다시 부활했습니다."

그는 "석탄을 태우고 철강을 생산하며 성장한 독일이 요즘은 '탄소의 과거'를 묻고 '저탄소 미래'의 길을 닦고 있다."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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