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의 오늘-박문국 설립

조선 후기인 1883년 신문·잡지 등의 편찬과 인쇄를 맡아보던 출판기관인 博文局(박문국)이 설치되었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직후 조선은 시대적 요구에 응하여 여러 가지 부국책을 추진하였는데, 박문국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산하기관인 동문학의 신문발행 업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초대총재는 민영목, 부총재는 김만식이었고 기자는 동문학과 각 司(사)에서 차출된 主事(주사) 또는 司事(사사)의 직함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한성부 남부 薰陶坊(훈도방) 저동의 永禧殿(영희전) 자리에 있었으며 1883년 10월 '한성순보'를 발간하였다. 그러나 1884년 12월 갑신정변으로 불타버리자 중부 慶幸坊(경행방) 교동의 전 왕실 건물로 이전, '한성주보'로 복간했다.

신문발행경비는 특수 세수권을 부여받아 충당되었고, 각 지방관아에 배부되어 그 수익금으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수금이 제대로 되지 않아 관세를 차용하다가 결국, 1888년 7월 재정문제로 통리교섭통상아문에 부속됨으로써 문을 닫고 말았다.

▶1807년 최초 증기선 클레몬트호 시운전 성공 ▶1945년 인도네시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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