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역외 유출, 급변하는 의료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지역 의료산업을 발전시키자는 의견이 의료계는 물론 대구, 경북 사회의 공론이 돼 가고 있다. 지역 의료계를 대표할 만한 이상흔 대구경북병원회 회장(경북대병원장), 이창 대구시의사회 회장과 이런 문제를 놓고 얘기를 나눠봤다.
-의료법 개정 추진에 따른 변화, 의료비 지출 증가에 따른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급여 삭감, 의료기관의 경쟁 가속화 등 의료를 둘러싼 의료 환경을 어떻게 진단하는가?
▶이창 회장=의사나 의료기관 입장에서 볼 때 현실에 맞지 않는 의료수가, 보험재정의 문제 등 한국의 의료가 왜곡된 부분들이 많다. 또 정부는 의료를 통제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의사와 의료기관을 벼랑으로 몰고 있는 느낌이다. 국민건강과 의료의 발전을 위해 다시 큰 틀에서 의료제도를 개편해야 할 것 같다.
▶이상흔 회장=의료법 개정안 등은 의료기관에 거대 자본의 참여를 허용하는 측면이 많아 의료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것 같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의료 자원이 수도권으로 집중하는 등 의료의 '빅뱅'이 우려된다.
-환자의 서울 유출 현상과 이로 인한 지방 의료기관의 쇠퇴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심각한가?
▶이상흔=서울의 초대형병원들은 지방을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경쟁적으로 병원을 증축하는 것을 보면 아찔하다. 여기에 KTX가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의 병원에서 진료 받는 지방 환자가 해마다 10% 이상 증가하고 있다. 대구에서 서울로 가 진료 받는 환자는 3~4% 수준으로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대구, 경북은 다른 지역에 비해 지역 의료기관 이용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그 비율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어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대산대소'(대구에서 생산하고 대구에서 소비하자)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겠나?
-환자의 역외 유출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서울에 비해 의료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인가? 아니면 진료시스템이나 환자 서비스 때문인가?
▶이창=서울의 초대형병원들은 집중적이며 대규모 투자가 가능하다. 값 비싼 의료장비나 시설 투자에 적극적이다. 서울의 한 초대형병원 외과 전문의 수는 대구의 대학병원 전체 외과 전문의 수보다 더 많다. 규모의 차이가 크다. 반면 대구의 대학병원은 형편이 여의치 못하다. 하지만 의술의 측면에서는 대구와 서울이 큰 차이가 없다. 환자에 대한 서비스나 소프트웨어적인 면에선 대구가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치료비는 서울이 많게는 2배 이상 비싸다. 비유하자면 서울은 병원을 '경영 마인드'로 운영하고, 대구는 병원을 '의료 마인드'로 꾸려가는 느낌이다.
▶이상흔=대구, 경북은 변화의 속도가 느리다. 특히 대구의 대학병원은 더 그렇다. 서울의 병원들은 환자가 많은 특정질환에 집중 투자하고 지방의 환자를 유치하기 의한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도 진료프로세스나 의료전달체제를 하루 빨리 정비해 환자의 불편을 덜어줘야 한다. 수술과 입원 날짜를 잡지 못해 환자에게 몇 개월쯤 기다리라는 식의 공급자 중심의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앞으로 노력하겠다.
-서울에 비해 대구의 의료수준이 낮지 않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이상흔=암이나 뇌동맥류, 신경계통의 중증 질환에 있어서 대구의 의료 수준은 전국 상위권이다. 서울의 몇 개 대학병원을 제외한다면 서울보다 높은 수준을 보이는 분야도 있다. 서울의 초대형병원들이 신기술과 새로운 장비를 들여와 마치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처럼 하는데 새로운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이창=장기이식 분야에서도 서울의 초대형병원을 제외하면 대구의 대학병원들은 전국 상위권이다. 인구 대비를 한다면 더 높은 점수를 줘야 한다. 심지어 서울에서 명성을 듣고 대구를 찾는 환자들도 많다.
-지역 의료계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그리고 의사나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상흔=우리 스스로 변해야 한다. 그런데 쉽지는 않다. 특히 대학병원은 보수적이고 자존심이 강해 어려운 점이 많다. 어쨌든 변화를 추진할 생각이다. 진료 시스템은 환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대학병원들도 '코피티션'(copetition, 서로 도와가며 공정하게 경쟁함)을 해야 한다. 다른 병원의 장점과 우위를 인정하고 지역 의료 발전을 위해 함께 힘을 쏟아야 한다. 시민들에게 지역 의료의 우수성을 알리는 사업을 벌이겠다. 생명이 달린 문제인데, 서울 아니라 미국에 간다고 한들 그 사람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불필요한 원정진료는 경제적, 시간적 손실이 크다. 시민들도 현명한 선택을 하기 바란다.
▶이창=친절한 의사, 친절한 병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의사들은 공동 개원을 통해 전문화하고 경쟁력을 갖추는 방법도 적극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자기가 치료하지 못하는 병이 있다면, 지역의 다른 의사를 소개하기보다 무조건 서울로 환자를 의뢰하는 의사들이 있는데 반성해야 할 일이다. 서울로 의뢰하기에 앞서 우리 지역에 적당한 의사나 병원이 있는지부터 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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