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신동엽의 생가로 간다. 1950년대의 우리 시단은 모더니즘의 물결과 전통 지향적 보수주의의 조류로 크게 나뉘어 대립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면서도 역사와 현실의 진정한 문제를 피해 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거의 모든 시인이 일치한다. 하지만 신동엽은 이런 풍조를 철저히 배격하는 자리에서 스스로의 시세계를 출발시켰다. 당대 시단의 양대 주류를 거부한 채 처음부터 민중적 지식인으로 시를 익히고 발표하기 시작했다. 신동엽의 시는 대개 민족적 동일성을 훼손시키는 모든 반민족적 세력에 대한 거부와 저항이 기조를 이루며, 민중에 대한 자기 긍정을 노래하고 있다. '껍데기'와 '쇠붙이'라는 비본질적인 것을 부정하고 '향기로운 흙가슴'과 '알맹이'와 같은 민족의 본질을 강조한 그의 시는 민족적 순수성의 회복과 민족적 동질성의 확인에 가장 높은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나아가 이 땅에 사는 민중들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 앞날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안목에 바탕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도로변에 버스를 세우고 부여 시민들에게 묻기도 하고 지도를 참고해가면서 주택가 작은 골목길을 걸었다. 드디어 나타난 아담한 기와집, 기와로 옷을 입은 작은 대문 위에는 '신동엽 생가'라고 적혀 있었다. 이 생가는 한때 남의 소유가 되어버린 것을 아내인 인병선 씨가 다시 사서 옛날의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원래 초가집이었는데 관리상의 이유로 기와를 입혔다. 방안에는 신동엽의 사진, 다른 가족들의 사진, 그리고 많은 책들이 책장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루에 걸터앉아 신동엽의 생애와 시의 세계, 그리고 부인인 인병선 씨와의 사랑 이야기를 했다. 신동엽이 가난 때문에 친구의 도움으로 서울 돈암동에서 헌 책방을 하다가 이화여고 3학년이던 인병선 씨를 처음 만난 이야기, 너무나 다른 빈부의 격차 때문에 도망치듯 함께 부여로 내려온 이야기, 보수적인 신동엽의 부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백마강 강가에 앉아 신동엽이 인병선 씨의 긴 머리를 손수 땋아주고 토끼풀로 묶어주던 이야기, 결혼한 직후 신동엽은 군대에 들어가고 손에 물도 묻히지 않고 살아왔던 인병선 씨가 시부모를 봉양했던 이야기, 생계를 위해 양장점을 하던 이야기, 독재의 시퍼런 칼날 아래 끝까지 남편을 믿고 따랐던 이야기, 병마 때문에 손이 마비되어 병실에서 구술을 하고 부인인 인병선 씨가 받아 적어 완성한 시가 바로 대서사시 '금강'이라는 대목에서는 눈시울을 붉히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가 지녔던 반외세적, 민족주의적, 민중적인 삶의 방식에도 관심을 보였지만 아이들은 역시 시인 부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감동을 한다. 마루 위 처마에 걸린 시 한 편을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아이들은 이미 신동엽과 인병선이 되어 있었다.
'우리의 만남을/ 헛되이/ 흘려버리고 싶지 않다/ 있었던 일을/ 늘 있는 일로 하고 싶은 마음이/ 당신과 내가 처음 맺어진/ 이 자리를 새삼 꾸미는 뜻이라// 우리는 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살며 있는 것이다.' (인병선, '생가' 전문)
신동엽을 위해 생가를 꾸미고 나서 인병선이 지은 시이다. 그녀에게는 신동엽과의 만남이 이미 있었던 일이 아니라 항상 존재하는 일이었던 게다. 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 함께 살며 있었던 게다. 투사인 신동엽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숨은 사랑 이야기, 신동엽이 진정 아름다운 것은 오히려 이면에 담긴 따뜻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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