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종문의 펀펀야구] 다시 일어선 안지만

사업을 하다보면 잘 될수록 무리하게 확장하려다 오히려 더 큰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늘 잘 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인생은 마라톤처럼 페이스가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기 마련인데 그 순간의 마음가짐이 평생을 좌우하는 것이다.

2006년 가을 삼성이 잠실에서 2연패의 축배를 들 때 대구 노원동에서 하염없이 회한의 눈물을 흘린 선수가 있었다. 불과 1년 전 만해도 그는 영광의 자리를 함께 했고 또 그럴 자격이 충분했는데 지금은 초대도 받지 못한 초라한 신세로 전락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교 2학년 때 내야수에서 투수로 전향한 안지만은 언더드로 투수였다. 3학년 때 본격적으로 투수로 활동하면서 다시 오버핸드로 바꾸었지만 프로 입단시 177cm에 67kg의 연약한(?) 몸매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2군에서 3년을 보내는 동안 이따금씩 1군에 올라와 등판기회를 가졌고 체격에 비해 직구의 볼끝이 좋은 선수로 인상을 남기곤 했다.

2005년 시즌 병역비리 사건으로 투수진의 공백이 생기자 안지만에게 기회가 왔다. 그해 안지만은 63경기에 출장에 8승3패 14홀드를 기록했다. 열심히는 했지만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성적. '내 볼이 프로에서도 통하는구나'라는 자신감도 생겼고 우승보너스로 6천500만 원의 상금도 받았다. 젊은 그로서는 처음 받아보는 거액. 연봉도 2천500만 원에서 150%가 인상, 6천500만 원으로 껑충 뛰었다.

가는 곳마다 칭찬과 환대로 이제 예전의 안지만이 아니었다. 마치 주인공처럼 황홀했고 모든 것이 이대로 이어질 것만 같았다. 지인들과 술도 마시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꿈을 꾼 듯한 그해 겨울은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2006년 동계 훈련이 시작되자 몸이 가볍질 않았다. 훈련을 계속하면서 조금 아픈 느낌은 있었지만 그려려니 참고 버텼다. 그러나 동계훈련이 끝날 무렵에는 투구의 감각이 무뎌지고 허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개막 엔트리엔 들었지만 이틀뒤 2군으로 내려갔고 열흘 뒤 다시 1군에 복귀했지만 다시 한달 뒤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해 다시는 1군에 올라 오지 못했다.

모두가 2연패의 환호속에 기쁨을 나누는 순간에 안지만은 어느새 나락으로 떨어진 자신을 질책하고 처절하게 후회했다. 그해 모든 선수들이 우승으로 연봉이 올랐지만 유독 자신만 삭감 최대치인 25%를 기록했다. 이제 거리에 나서도 아무도 알아주는 이도 없었다.

바닥에 서자 비로서 정신이 들었다. 지난해 성적이 혼자의 힘으로 이룬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을 때 자신이 무엇을 향해 나가야 할지를 알게 됐다. 태어나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머니에게 용기를 달라고 빌었다. 그리고는 달라졌다. 현재 그의 체격은 182cm, 85kg. 열심히 몸을 관리하고 훈련에만 몰두한 결과물이다. 2007시즌 이제 다시 되찾은 마운드가 그에게는 의미가 정말 남다르다.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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