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자신의 생일날, 우연히 채팅룸에 들어가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둘은 e-mail을 주고 받으며 삶과 문학을 이야기하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관심을 나누며 애정을 키워간다.
그런데 여자는 동네의 작은 서점 주인이었고, 남자는 도시의 대형 체인서점 사장이었다. 여자는 어머니가 운영하던 서점을 물려받아 오랜 세월 같은 공간을 지켜왔다. 때문에 가족적인 분위기의 서점은 고객들의 이름과 취향이며 안팎의 일상사까지도 훤히 꿰고 있다.
서점은 하나의 작은 문화공간으로 주인과 점원들은 물론 고객들과도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골목에 대규모의 체인서점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듣는다. 여자는 서점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지만 결국은 역부족으로 문을 닫게 된다. 그런데 그 체인서점의 사장이 바로 그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갈등하는데….'
이 이야기는 미국배우들 중 팬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출연하는 'YOU'VE GOT MAIL'이란 영화의 줄거리이다. 제임스 스튜어트와 마가렛 설리번이 주연한 1940년대 고전 '모퉁이 서점'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도시의 오래된 명소인 아동전문서점 주인과 초대형 체인서점 사장의 다툼과 사랑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대구 도심 거리를 수십 년간 지켜온 한 서점이 또 문을 닫는다는 안타까운 얘기를 접하면서 영화 '모퉁이 서점'을 떠올렸다.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40, 50대의 연령층만 해도 대구역 네거리에서 반월당으로 이어지는 도심 도로변에 성황을 이루었던 숱한 서점들을 기억한다.
그곳에서 전공서적과 참고서를 구입해 공부를 하며 청운의 꿈을 키웠고, 아껴둔 용돈으로 읽고 싶었던 책을 사 친구들과 돌려 읽으며 지성과 지식에 대한 갈증을 채웠다. 마음에 둔 사람에게 보낼 애틋한 시집을 곱게 포장할 때면 가슴이 한없이 설레기도 했다.
그런데 1998년 후반부터 18년 역사의 분도서점을 필두로 서점들이 하나 하나 문을 내렸고, 향토서점의 간판격이었던 제일서적마저 경영악화로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학원서림과 본영당서점은 자리를 옮겼다. 시민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도심의 향토 서점들은 이제 거의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를 서울에서 온 대형체인인 교보문고와 영풍문고가 대신했다.
대구시민과 함께 애환을 나누던 토종 서점의 몰락과 함께한 시절을 풍미하던 우리의 문화풍속도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그런데 문제는 이같이 지방도시의 정감어린 골목 문화가 하나하나 사위어 가는 것은 수도권지역 거대자본의 지칠 줄 모르는 포식행각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화 '모퉁이 서점'에서와 같이 소박한 동네 서점 하나에도 예외 없는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갈증을 주체하지 못하는 '중앙'과 '서울'이란 이름의 포식자가 자신의 몸을 키워 갈수록 '지역'은 마치 허울만 남은 식민지(?)로 전락해갈 뿐이다.
국가와 사회의 모든 중심 기능이 서울에만 몰려 있다 보니 지방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유용자원들은 '서울'이란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다.
지역의 명문대학이 수도권의 3, 4류 대학보다도 못한 구석자리로 내려앉은 지 오래이고, 동네 슈퍼까지 모조리 내몬 '서울'이란 이름의 공룡은 이제 지역의 눈과 귀인 '언론'까지 무력화시키기 위해 무차별 공략을 감행하고 있다.
가수 페티김이 '서울의 찬가'를 부를 때만 해도 서울은 우리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다.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는 우리의 수도, 이땅의 상징인 서울을 우러르며 내 일인 양 함께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서울공화국 특별시민'을 위한 것일 뿐이다.
공화국 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지방에 대한 독점적인 지위와 종속적인 구조를 갈수록 강화하고 있다. '세계화된 세상일수록 크고 작은 것들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할텐테….'라는 우려의 목소리는 그저 세상물정 모르는 샌님의 자탄쯤으로 치부해버릴 따름이다. 아! '모퉁이 서점'까지 점령한 '위대한 서울공화국 만세!'.
조향래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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