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희곤 안동독립운동기념관 초대 관장

"항일운동 앞장선 안동인 정신 체험하고 배우게 할 것"

"양반의 고장 안동에 독립운동기념관을 건립한 것을 의아해 하며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발상지이면서,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곳이 안동이에요. 기념관 건립을 계기로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 독립·민족운동 교육의 장으로 다시 태어나게 돼 기쁩니다."

지난 10일 개관한 안동독립운동기념관 김희곤(53·안동대 사학과 교수) 초대 관장은 50여년간 전개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안동지역 출신이 항상 중심에 서 있었으며, 독립운동을 맨 먼저 시작한 이도 안동사람이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시작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을미의병(1895년)이 아닙니다. 그보다 1년 이른 1894년에 일어난 갑오의병입니다. 안동 유림들로 구성된 2천여 명의 의병이 상주에 있는 일본군 병참부대를 공격한 것이 처음입니다."

김 관장은 51년간 이어진 독립운동사에서 현재까지 독립유공자로 포상된 인물이 전국적으로 1만 1천여 명에 달하는데, 이 중 안동 출신이 310명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전국 시·군의 독립유공자가 평균 30여 명 정도 되는데, 이에 비하면 10배나 되는 엄청난 수치지요. 또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일제 침략에 항거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순국 자결인사 60여 명 중 10명이 안동 출신입니다."

김 관장은 이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 선생을 비롯해 만주지역 항일운동가 김동삼, 민족시인 이육사, 6·10만세운동을 주도한 권오설 선생 등을 열거하며 "이분 중 한 사람만 있어도 개인 기념관을 건립할 이유가 충분하다."며 안동 독립운동기념관 설립 당위성을 설명했다.

김 관장은 안동이 다른 시·군에 비해 독립운동 에너지가 높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퇴계 학맥과 통혼이 주요한 구심점 역할을 했으며, 그 연결고리로 안동지역이 민족문제에도 한마음으로 대처했다고 분석했다.

"흔히 안동 양반 하면 보수적이고 원리원칙에 집착해 고리타분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이들이 보여준 독립운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집단의 이익이라면 사회 정의는 물론 자존심마저 내팽개치는 우리 사회 지도층들과는 비교가 된다는 게 김 관장의 지적이다.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 옛 협동학교 터에 문을 연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부지 2만 5천400여㎡ 연면적 2천800여㎡에 지하·지상 각 1층 규모로 3개의 전시실과 수련시설 등을 갖췄다. 전시실에는 안동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국내·외 활동과 독립운동가 700인을 추모할 수 있는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다.

옛 협동학교에 기념관을 건립한 것은 독립운동가인 유인식 선생이 1907년 설립, 3·1운동 때까지 김대락, 김동삼 선생과 같은 항일운동가와 인재를 양성하는 등 안동지역 애국계몽운동의 산실 역할을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김 관장은 기념관에서 한국근대사와 독립운동사를 중심으로 한 연수교육과 학술연구 사업을 펼 계획이다. 현재 독립운동유적 해설사 양성 교육과 역사교사를 위한 안동인의 독립운동유적지 탐방, 청소년을 위한 보훈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어린이에서 어른까지 유교정신 체험과 교육의 장이 되도록 전시관 옆에 연수관을 마련, 하루 40명∼80명 정도 수용할 수 있게 했다. 앞으로 각 유관기관 및 단체와의 협력체계를 통한 위탁교육도 실시할 계획이다.

김 관장은 "해방 전·후 좌우 이념 대립으로 나라가 분열됐을 때도 안동은 유교이념으로 양쪽을 통합, 충돌이 없었다."며 "보수와 진보, 중도 등으로 갈등이 심한 요즘 지난날에 보여준 안동인의 정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안동·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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