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심의 종로통을 걷다가 '교련복'을 입은 불량스런 고등학생이 땅바닥에 엎드려 앵벌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바로 뒤의 가게는 '따라지학교'다. 군사독재시절에나 입던 교련복이 21세기에 등장한 것도 수상한 일인데 따라지학교는 또 무엇인가.
"참 재미있어요. 옛날 생각이 절로 납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로 되돌아간 듯해서 좋아요."
요즘 대구시내 곳곳에는 '따라지학교'와 '연탄구이집 전봇대', '학교종이 땡땡땡 ' 3학년4반' '야간국민학교' 등 옛날식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퓨전술집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따라지학교가 옛날 책걸상을 갖춘 전형적인 학교분위기라면 '전봇대'술집은 70년대 초반풍으로 실내를 장식했다.
이곳에 가면 교련복을 입은 종업원이 양은도시락 메뉴판을 내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친구'나 '말죽거리잔혹사'같은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불량스런 복장을 입은 종업원은 실제로는 친절하다.
따라지학교는 2005년 오픈했다가 불이 나는 바람에 잠시 휴업, 올초인 지난 2월 다시 문을 열었다. 책상 두개를 이어붙인 테이블에 앉자 불량스런 학생이 와서 주문을 받는다. 마치 학교 교실에 앉아서 술을 마시는 듯한 느낌이다. 칠판 앞에는 떠든 사람도 적혀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과 태극기, 교훈과 급훈도 함께 칠판위에 걸려있다. 당시에는 교실마다 대통령 사진을 걸어두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김병곤(36) 사장은 경북고를 졸업했다. 그는 "학교다닐 때 좀 불량스러웠다. 그 때 흉내를 좀 내본 것도 있고 그 시절이 그립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70년대 교실을 체험해 볼 수 있다. 흘러나오는 음악도 70년대 유행하던 것이다. 흑백TV에서는 홍콩출신의 진추하가 부르는 '원섬머나잇'이 흘러나온다.
40~50대만 추억에 젖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강선호(28·신한은행) 씨는 "초등학교 다니던 생각이 난다. 회사사무실과 가까워서 자주 오기도 하지만 옛날분위기 때문에 더 자주오게 된다."고 말했다. 강 씨는 초등학교 다니던 1988년쯤 교훈이 '바른 사람이 되자'였다."며 즐거워했다. 그는 "분위기만으로 자주 오는 게 아니라 시내술집들과 달리 여기서는 사장님과 종업원이 동네형이나 친구처럼 대해주는 데다 가격도 착하다."고 말했다. 여미연(28·여·대구시 남구 대명동) 씨는 "처음왔는데 색다르고 분위기도 좋고 편하다."고 말했다.
20대는 초등학교 시절을 생각하지만 4050세대들은 아련한 향수에 젖는다. 가볍게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나서던 이시우(51·대구시 달서구 대곡동) 씨는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며 "집이 가깝지는 않지만 생각나면 한 번씩 들른다."고 말했다. 교련복을 입고 군사훈련을 받았던 기억도 지금와서는 새롭게 느껴진다. 그는 "나는 교련복세대"라면서 "무엇보다 (교련복 입고 서빙하는) 사장과 따라지학교의 콘셉트가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대구시 남구 봉덕동에 자리잡은 '연탄구이집 전봇대'도 옛추억을 안주로 삼는 주당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간판에는 타임머신을 타고 가듯 '1971년으로 되돌려드린다'고 친절히 적혀 있다. 이곳의 심우영 사장은 1971년생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옛날 소품을 많이 모아왔다."면서 친구가 하는 전봇대를 보고 1호점을 차렸다고 밝혔다.
이곳에서는 낡은 14인치 흑백TV에서 70년대 방송이 나온다. 한쪽 TV는 낡아서 수시로 흰색주사선이 지직거리며 지나간다. 필름을 거꾸로 돌려서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이곳의 인기메뉴는 가볍게 한 잔 마신 뒤 먹는 '추억의 도시락밥'(2천500원). 낡은 양은도시락에 계란프라이와 볶음김치, 소시지 두쪽 그리고 고추장 한 스푼을 넣고 마구 흔들어서 먹는 맛은 기막히다. 돼지불고기와 조개구이 등 대부분의 메뉴는 1만 원을 넘지 않는다.
심 씨는 "처음엔 분위기가 신기해서 오지만 안주를 먹어보고는 맛있어서 자주 오는 단골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금요일 이후 주말에는 20대 등 젊은 층이 많이 찾고 평일 이른 시각에는 직장인과 30, 40대가 많이 온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오히려 오후 10시 이후 늦은 시각을 선호한다.
"그럴 때는 스스로 나이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변을 살피기도 하지만 서로가 섞이는 그런 분위기를 오히려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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