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의 오늘-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 지방에 규모 7.9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요코하마는 도시 전체가 파괴되고 도쿄에서는 화재로 밤 기온이 46℃까지 오르는 등 곳곳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1926년 도쿄 시청에서 발간한 '도쿄지진록 전집'에 따르면, 이재민 약 340만 명, 사망자 9만 1천344명, 행방불명 1만 3천275명, 중상 1만 6천514명, 경상 3만 5천560명, 전소 38만 1천90가구, 전파 8만 3천819가구, 반파 9만 1천232가구에 이르고 있다. 손해액은 약 55억 엔으로 추정되었는데, 1922년도의 일반회계예산이 약 14억 7천만 엔이었던 것과 비교해 보면 그 손해액이 얼마나 막대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민심의 불안을 돌리려 조선인 폭동설을 유포시켜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그것을 민중에게 확신시키기 위하여 유언반, 지휘반, 실행반 등의 공작대를 조직하여 그들로 하여금 방화·독물투입·투탄 등의 테러 행위를 감행시켜, 마치 조선인들이 한 것처럼 조작했다. 일본인들은 한국인 폭동설을 그대로 믿고 그 보복책으로 각 지방별로 자경단을 조직, 군경과 자경단에 의한 한국인 대학살이 자행됐다. 이때 학살된 한국인의 수는 확실하지 않으나 김승학의 '한국독립운동사'에서 6천66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1952년 징병제 실시 ▶1983년 KAL기, 소련에 격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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