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8월의 일요일에 경산 성당에서는 이주민 여성을 위한 바자회가 있었다. 이 땅으로 와서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된 여성들을 위한 행사였다. 경산 지역에는 100여 명의 이주민 여성이 있고, 5천500여 명의 외국인 거주자가 있다고 하는데, 구미나 포항지역보다 외국인 거주자가 많다고 한다.
우리는 11명의 어머니들과 17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한국말이 서투른 이들은 남편과도 의사소통이 쉽지 않고, 자신이 낳아 기르고 있는 아이들과도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은 남편은 물론 자식들에게도 거리감을 느끼고 살 수밖에 없다.
한국말이 서투른 이들은 아이들의 숙제를 봐 줄 수도 없고, 경제적 형편상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수도 없다고 한다. 아이들의 경우에도 엄마와의 대화가 부족하고,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며, 학교에서도 혼혈이라고 놀림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우리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우리와 피부색이 다르다고 무시하고 냉대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에게도 그런 아픔이 있지 않았던가. 일본의 지배를 받으며 조선인이라 차별받았고, 일본에 살면서도 차별받는 재일동포, 한국전쟁 이후 미군과 결혼해서 이 땅에서 버림받거나 낯선 미국 땅에서 버림받은 여성들도 있었다.
독일 사람들이 피하던 광부와 간호사를 하겠다고 이 땅의 아들과 딸들이 떠났다. 낯선 나라에서 우리의 딸들은 독일인 간호사들이 꺼리던 일을 했고, 아들들은 광산에서 석탄을 캤다.
이들의 임금을 담보로 돈을 빌려야 했던 가난한 우리의 대통령이 이들을 만나 눈물을 펑펑 쏟았다는 것이 그다지 멀지 않은 1960년대의 일이다. 독일로 유학 갔을 때 어려움 속에서 눈물겨운 노력을 통해 당당하게 독일에서 자리 잡은 그들의 성공담을 들으면서 가슴 뭉클했다.
2006년 NFL 슈퍼볼 최우수 선수상을 받고 엄청난 환영 속에 한국을 방문했던 하인즈 워드와 그의 어머니. 이국땅에서 모진 역경을 딛고 아들을 성공으로 이끈 그 어머니가 이 땅을 다시 찾았을 때 했던 말이 가슴을 찌른다. "어려웠던 시절 우리가 한국에 돌아왔다면 우리 아들은 거지가 되었겠지?"
우리는 미국에서 성공한 그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면서도, 정작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하인즈 워드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워드 모자가 한국에 와서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수많은 하인즈 워드와 그들의 어머니를 만나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으니 '세계화'를 해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세계화'가 새삼스럽게 요즘 시작된 것은 아닐 것이다. 로마 시대에 이스라엘 지역에서 만들어진 유리구슬이 신라의 무덤 속에서 발견되고, 신라왕릉 무덤의 문무석 중에 아랍인의 모습이 보이며, 처용의 이야기도 전한다.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것에 너무 매달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단일성이 의미가 있을까? 단일성을 외치면서 다양성을 부정하고 다양함에 대해 차별을 일삼아도 괜찮은 것일까?
이번에 경산 성당에서 바자회를 계기로 만나본 이주민 여성들은 다양성에 대한 우리의 냉정한 차별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크지만, 문화적인 어려움, 정서적인 어려움도 너무나 크게 보였다.
우리가 이들에게 친정 식구 같은 존재가 되어줘야 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이들을 돕는 것도 필요하다. 한글을 가르쳐 주고 한국의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는 손길도 필요하다. 일시적인 관심이나 도움으로 그쳐서도 안 될 것이다.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이 함께해야 할 것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아프고 힘든 시절이 있었고, 우리도 그들처럼 조국을 떠나야 했던 이들이 있었다. 이제 그들도 우리처럼 힘든 시간을 담담히 돌아보며 성공담을 나눌 수 있고, 성공을 도와준 곳으로 이 땅을 기억하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정홍규 신부(경산본당 주임·산 자연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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