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신의 목소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에게 주어지는 최극상의 호칭엔 '神(신)의~' 또는 '하늘이 내린~' 등의 수식어가 붙지 않을까.

노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6일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에 지구촌이 큰 슬픔에 빠졌다. 파바로티의 존재감이 이렇게도 컸던가, 새삼 놀라게 된다.

이탈리아에서 제빵업자의 외아들로 태어났던 그는 아마추어 테너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26세 때이던 1961년 레지오 에밀리아의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으로 오페라에 데뷔했고, 이후 세계 각지의 주요 오페라 극장을 통해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72년 메트로폴리탄에서 열린 도니제티 '연대의 딸' 공연 때는 9차례 하이C(3옥타브 도)를 소화해 내야 하는 고난도 곡을 120년 만에 처음으로 악보대로 불러 세계 음악계를 뒤흔들었다. 1988년 베를린에서의 '사랑의 묘약' 공연 때는 1시간 7분간 165번의 앙코르를 받아 기네스북에 올랐다.

1990년 로마 월드컵 전야제에서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했던 '스리 테너 콘서트'는 그를 음악계의 슈퍼 스타로 등장시켰다. 이후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의 '네쑨 도르마(Nessun Dorma)'는 그의 전매특허가 됐다. 아리아 끝부분에서 마치 활화산이 터지듯 '빈체로 빈체로~'를 열창하는 순간 관객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감동의 눈물을 흘리곤 했다.

말년엔 예술의 상업화, 탈세 의혹 등 갖가지 구설수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35세 연하의 비서와 결혼한 것은 도덕적으로 큰 흠이 됐다.

하지만 노래에 대한 열정은 누구도 따르지 못할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스리 테너 콘서트를 가진 후 은퇴하고 싶어했던 그는 작년 췌장암 수술 당시에도 고별 순회공연을 준비중이었다고 한다.

파바로티는 결국 은퇴 없는 현역으로서 삶을 마쳤다. 작년 2월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불렀던 '네쑨 도르마'는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다.

육중한 몸집, 숯검댕이 눈썹과 덥수룩한 수염, 이웃집 아저씨 같은 넉넉한 미소를 잃지 않았던 불후의 마에스트로! 20세기 최고의 성악가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음악의 향기는 영원할 것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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