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이문재 作 '산책 시편 1'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혼자서 사나흘을 걸어갔지요

발효의 시간이었지요

가는 편지와 받아 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습니다

그대가 떠나고 난 뒤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중의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이유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었겠지요

'산책'이란 아름다운 말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속도가 삶을 지배하는 요즘 시대에 누가 느려터진 산책을 거들떠볼 것인가. 사람들은 느린 산책이 가져다주는 마음의 평화를 알지 못한다. 속도에 중독된 사람들은 대개 참을성이 없다. 뭐든지 즉각!이다. 전자우편을 쓰는 사람은 알리라. 간절한 마음 담은 편지를 손가락 하나로 보낼 때의 허전함을. 느긋하고 수굿한 마음이 빚어내는 발효의 시간. 모름지기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는 그런 발효의 과정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더구나 그러하다. 그리움과 기다림이 사랑의 본질이 아니던가. 그리움과 기다림은 발효의 시간을 통해 숙성되는 것. 아하, 알겠다. 왜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람들의 표정이 취한 듯 몽롱하게 변하게 되는지를.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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