移徙(이사)
김연동
꽃뱀이 허물 벗듯 세속 도회를 지나
국화꽃 치장하고 먼 길 떠날 날이
청하늘 먹구름 일 듯
예사롭지 않은 지금,
마른 꽃잎일랑 책갈피에 접어 넣고
상처를 어루만지듯 삶의 흔적 포장하는
마지막 무대의 연출
저문 날이 설렌다
세월을 덧칠해 온 아내의 갈색 머리
새하얀 가르마가 훈장처럼 빛나는 시간
조용한 안착을 꿈꾸며
신발끈을 고쳐 맨다
생존의 표정 읽기는 늘 이렇듯 구겨지고 꿰맨 상처의 흔적들을 남깁니다. 크게 보면 삶은 통째로 하나의 연출인 것. 그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거처를 찾아 떠돌고, 더러는 먼 길섶에 허물을 남기기도 하고 그러지요.
세속의 雜沓(잡답)에 부대끼노라면 누구나 몇 번씩은 이사를 겪습니다. 그럴 적마다 우리는 더 나은 삶의 광휘, 더 넉넉한 마음의 평안을 꿈꾸지요. 지상의 존재들이 끝내 피해 가지 못할 마지막 이사는 '국화꽃 치장하고' 떠나는 일. 예사롭지 않은 그 일을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데서 은빛의 연륜을 느낍니다.
또 한 번의 이삿짐을 꾸리는 날, 화자는 문득 생의 종언을 떠올립니다. 마른 꽃잎 같은 추억을 보듬고, 덜 아문 생채기들을 조심스레 감싸면서. 다시 '조용한 안착을 꿈꾸며/ 신발끈을 고쳐 매'는 화자 앞에 하얗게 빛나는 가르마. 질정 못할 '세월을 덧칠해 온 아내의 갈색 머리'도 이제 할 수 없는 가을빛입니다.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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