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 시조산책-김연동 作 '移徙(이사)'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移徙(이사)

김연동

꽃뱀이 허물 벗듯 세속 도회를 지나

국화꽃 치장하고 먼 길 떠날 날이

청하늘 먹구름 일 듯

예사롭지 않은 지금,

마른 꽃잎일랑 책갈피에 접어 넣고

상처를 어루만지듯 삶의 흔적 포장하는

마지막 무대의 연출

저문 날이 설렌다

세월을 덧칠해 온 아내의 갈색 머리

새하얀 가르마가 훈장처럼 빛나는 시간

조용한 안착을 꿈꾸며

신발끈을 고쳐 맨다

생존의 표정 읽기는 늘 이렇듯 구겨지고 꿰맨 상처의 흔적들을 남깁니다. 크게 보면 삶은 통째로 하나의 연출인 것. 그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거처를 찾아 떠돌고, 더러는 먼 길섶에 허물을 남기기도 하고 그러지요.

세속의 雜沓(잡답)에 부대끼노라면 누구나 몇 번씩은 이사를 겪습니다. 그럴 적마다 우리는 더 나은 삶의 광휘, 더 넉넉한 마음의 평안을 꿈꾸지요. 지상의 존재들이 끝내 피해 가지 못할 마지막 이사는 '국화꽃 치장하고' 떠나는 일. 예사롭지 않은 그 일을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데서 은빛의 연륜을 느낍니다.

또 한 번의 이삿짐을 꾸리는 날, 화자는 문득 생의 종언을 떠올립니다. 마른 꽃잎 같은 추억을 보듬고, 덜 아문 생채기들을 조심스레 감싸면서. 다시 '조용한 안착을 꿈꾸며/ 신발끈을 고쳐 매'는 화자 앞에 하얗게 빛나는 가르마. 질정 못할 '세월을 덧칠해 온 아내의 갈색 머리'도 이제 할 수 없는 가을빛입니다.

박기섭(시조시인)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6·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여야의 권력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선거 결과에 따라 이재명 정부의 국정 동력과 민...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방한이 임박하며 그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4일 한국에 도착한 황 CEO는 5일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배우 지창욱이 국세청의 비정기 세무조사에서 거액의 세금을 추징당했으며, 소속사 스프링컴퍼니는 고의적 탈세가 없음을 주장하며 성실한 납세 의무...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실린 기고문에서 이재명 정부가 '강경 좌파'로 규정되며 한미동맹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기..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