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타고 남은 여름이다. 숨 막히게 뜨겁던 사랑도, 입사할 때의 열정도 어느새 일상처럼 느껴질 때, 가을이 시작된다. 하지만 나무가 제 잎사귀를 버릴 때 생의 절정에 이르는 것처럼, 뜨거움이 사그라질 때가 진짜 인생이다.
9, 10월의 주말은 늘 떠나야 한다. 도로 확장으로 대구에서 1시간 거리로 당겨져 느지막이 일어나서도 출발할 수 있는 곳, 김천으로 떠나보자. 아담한 직지사가 있고, 단아한 청암사도 있다. 직접 사과를 따고 사과나무를 분양받을 수 있는 농장도 있고, 수려한 산세의 수도산을 바라보며 공짜 찜질을 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산들은 운무에 둘러싸여 있고, 계곡물은 아직도 요란하며, 깊은 산속 햇살 풍부한 장소의 나무들은 벌써 발갛게 물들고 있다. 김천의 가을은 이미 문턱까지 왔다.
◆아담한 직지사
구름도 자고 가고 바람도 쉬어 간다는 추풍령. 그 아래 첫 고을 김천이 관광객에게 사랑받는 것은 직지사가 있어서다. 자그마한 나무들이 많아 잘 꾸며진 정원 같은 직지사(사진 ①)는 단풍이 들 때 최고 절경이지만, 가을 주말은 늘 붐빈다. 그래서 더위도 지나가고 인파도 덜 몰린 지금쯤 방문해도 좋다.
고려 시대에는 태조 왕건의 지지를, 조선 때도 태실을 둘 만큼 애정을 받던 곳이라 그 규모가 꽤 큰데도, 절이 사람을 누르는 위압감이 없다. 되레 중생들을 포근히 감싸는 분위기가 강하다. 몇 개의 문을 지나는 입구에서도 경외감과 위축감보다는 평온함과 안락함이 느껴진다. 그것은 직지사의 조용한 태도 덕분이다. 입주문 앞 사명대사가 앉았다는 돌에조차 그 흔한 비석이나 표지판 하나 없이, 언제부턴가 태연히 자리 잡고 있는 돌처럼 무심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찰 가운데 하나인 직지사는 템플스테이(사진 ②)로도 유명하다. 사찰 예절, 108 참회, 스님과의 대화, 불교문화 강좌, 발우공양, 태극권, 산행, 다도, 촛불 서원, 연꽃 만들기, 염주 만들기 등 생활 속 번뇌를 잊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매월 넷째 주 주말과 휴일 1박 2일 동안 하며, 참가비는 5만 원.
기껏 김천까지 와서 직지사만 보고 가느라 뭔가 허전했던 사람에게는 얼마 전 생긴 직지문화공원(사진 ③)이 허전함을 달랠 수 있다. 아기자기한 조각작품들과 폭포, 분수, 잔디밭 등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다. 아이들의 공간인 어린이 놀이터도 잘 꾸며놨다. 특히 매일 오후 8시 30분 중앙분수대에서 펼쳐지는 분수 쇼(사진 ④)는 한번쯤은 꼭 봐야할 명물이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분수는 20분 동안 동화 속 나라에 당신을 초대한다.
시간이 조금 더 허락한다면 직지사를 떠나는 길목에 세계도자기박물관(사진 ⑤)도 한번 들러보자. 유럽 각국의 도자기 역사가 한눈에 펼쳐진다.
◆단아한 청암사
김천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절임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이곳이 비구니 스님들의 승가대학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좋은 이유는 첫째는 조용함, 둘째는 고즈넉함, 셋째로 고요함이다. 그만큼 세속에서 떠나있다. 경내에서 떠들다간 바로 쫓겨난다.
일단 청암사(사진 ⑥)는 들어가는 입구가 멋지다. 길 옆 계곡은 물 내려가는 소리로 요란한데, 청암사란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수량이 풍부해 돌들도 이끼투성이일 만큼 늘 수량이 넉넉하다. 자연 그대로 자라난 나무들의 멋스러움은 덤이다.
청암사 제일 깊은 곳에는 인현왕후가 폐서인돼 만 3년을 묵었던 극락전이 있다. 사찰이긴 하나 인현왕후가 묵기 위해 양반가 기와집처럼 만들어, 사찰이면서도 구조가 독특하다. 대웅전과 극락전에서는 기와와 단청을 자세히 살펴보길 바란다. 눈이 즐겁다.
단 청암사는 관광객에게 무심한 곳인 만큼, 화장실이 재래식이다.
아이들과 함께 왔다면 지척에 자리한 옛날솜씨마을을 다녀와도 된다. 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된 이 마을에서는 짚 공예와 전통음식 등을 체험하고 제기차기, 줄넘기 등 다양한 전통놀이를 즐길 수 있어 아이들의 교육 및 놀이 장소로 좋다.
◆보람이 농장
11월까지 사과 체험행사를 하는 보람이 농장(사진 ⑦)은 무공해로 재배한 빨간 사과를 인터넷으로 싼값에 살 수 있어 유명한 농장이다. 또 사과나무를 분양하는 것으로도 널리 알려진 곳. 분양한 사과나무에서 수확한 사과는 몽땅 택배로 보내준다. 수확량이 25㎏를 넘지 않으면 다른 사과나무에서 수확한 사과로 보전해준다. 사과나무 1그루 분양가는 1년에 8만 2천 원이다.
사과 따는 체험도 재미가 쏠쏠하다. 파란 사과, 붉은 사과, 분홍빛이 감도는 사과 등 다양한 빛깔의 사과는 달콤한 향만큼이나 인상적이다.
◆이곳도 강추
수도산을 바라보며 찜질할 수 있는 곳, 수도산참숯가마. 최고 장점은 공짜라는 것. 커다란 황토가마 5개(평일 2개, 주말 3개 개방)가 있는데, 입장료가 없다. 반소매 티와 반바지를 각각 5천 원에 판매(대여 아님)하지만 미리 준비해가면 그 비용조차 들지 않는다. 찜질 후 샤워시설이 없어 땀을 닦을 수건도 필수. 대신 음식과 음료수는 반입금지. 이곳에서 사먹어야 한다. 참숯에 구워먹는 돼지고기가 1인분에 5천 원, 미역국밥 3천 원, 칼국수 4천 원, 공깃밥 1천 원. 가마에서 구워져 나온 참숯도 판매한다. ㎏당 5천 원인데 고기 구워먹을 숯이 필요하다면 1만 원 하는 1상자를 사면 좋다. 돼지고기 냄새가 워낙 좋아 안 먹고 가긴 힘들 듯. 054)437-3735.
경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 중 하나로 꼽힌다는 방초정. 주위를 붉은 백일홍이 휘감고 앞엔 아름다운 연못이 펼쳐진 풍광이 일품이다. 또 이 정자가 특별한 것은 2층 누각 중앙에 온돌방이 있다는 것. 그리고 1층에 아궁이가 있어 겨울철에 불을 때는 등 기묘한 정자의 하나다.
인근에 지례흑돼지마을이 있어 출출한 배를 채워도 좋다. 왕소금구이 1인분(200g)에 7천 원.
김천·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 경험자 Talk
15, 16일 이틀 동안 쉴새없이 비가 내렸지만 서울에서 온 관광객들은 김천의 때묻지 않은 청정자연에 마음을 빼앗겨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경북에 대한 고정관념을 이번에 깰 수 있어 너무 좋았다고 했다.
▷전이곤(59·서울 성동구 용답동)=5년 전에 경북을 방문했을 때는 음식을 전혀 먹지도 못하고 숟가락을 놓아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 와서는 여기가 경북이 아닌 줄 알았다. 접시가 깨끗이 비워질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사실 경북은 물 한잔도 얻어먹을 수 없는 동네로 인심이 각박하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어딜 가나 친절하고 고향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깰 수 있어 다행이다.
▷박용주(38·여·서울 관악구 신림5동)=청암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처음엔 그저 그런 사찰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전혀 때묻지 않은 자연은 물론 무엇보다 조용해 일상생활에서의 스트레스를 사색하면서 풀 수 있어 좋았다. 또 경상도 음식은 입에 잘 맞지 않을 거라던 생각도 무참히 깨져버렸다.
▷변경숙(27·여·서울 송파구 가락동)=그동안 기차나 승용차 차창 밖으로만 스쳐 지나갔던 김천에 처음 왔다. 한마디로 웰빙도시였다. 보람이 농장에서 배 터지게 먹은 사과 맛과 조금이라도 사과를 더 싸주고 싶어하던 주인 부부의 따뜻한 마음씨를 가슴 속에 담고 집에 갈 수 있어 너무 따뜻하다. 다음에도 꼭 경북주말여행에 참가하고 싶다.
♠ 주머니 Tip
김천의 청정자연을 즐기는 데는 큰 돈이 들지 않는다. 많은 관광지가 입장료를 받지 않고 음식도 저렴하면서 푸짐한 것이 특징이다.
여행 순서별로 따져본 한 명의 여행경비는 다음과 같다.(단위 : 원, 기름값 제외)
△1일
방초정 무료
점심 흑돼지구이 7,000
청암사 무료
참숯가마 체험 무료
저녁 산채정식 10,000
직지문화공원 무료
숙박 호텔 50,000
△2일
아침 백반정식 5,000
직지사 2,500
세계도자기박물관 1,000
점심 해물수제비 4,000
보람이농장 체험 무료
----------------------------------------------
계 79,500
*이번 주 여행코스:방초정-청암사-참숯가마체험-직지문화공원-직지사-세계도자기박물관-보람이농장.
*'어서 오이소' 다음 주(22, 23일) 코스는 '추석특별기획-문경·영덕 달빛기행' 편입니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