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실덩실, 비포장 시골신작로를 달려 온 초록버스가 마을 어귀에 당도합니다. 순간 올챙이 떼처럼 올망졸망 무리지어 놀던 아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 달음박질을 시작합니다. 수 백 미터의 거리를 숨조차 헐떡이지 않고 뛰어와 버스 문짝에 매달립니다. "형아~" "누나야~" "와! 이 자식 많이 컸네."
기뻐도 울고 슬퍼도 우는 것이 우리네 미풍양속입니다. 두 손 마주잡고 폴짝폴짝, 대성통곡 한바탕이 벌어집니다. 이리저리 쥐어박고 두드려도 봅니다. 마치 매상가마니 품질 검사하듯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긴 이별 간절한 그리움, 학수고대해온 추석입니다.
오랜만에 보는 형이 신기하기만 한 동생, 본격적인 신체검사가 시작됩니다. "형아 파리도 미끄러지겠다." 반질거리는 형의 구두를 부러운 듯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은 존경심으로 가득합니다. "우아 목에 새끼줄도 매었네." 다림질 된 양복에 구두, 넥타이까지 갖추었습니다. 모처럼 명절이라 때 빼고 광내었습니다. 70년대 농촌 새마을운동이 끝나갈 무렵, 썰물 빠지듯 도시로 밀려나갈 때 함께 나간 것입니다.
형형색색의 선물보따리가 풀어집니다. 식구마다 양말 한 켤레씩, 색깔 고운 옷가지들도 준비했습니다. "돈도 없을 텐데 뭐 하러 이 만큼이나 사왔어" "저 월급 많이 받습니다. 걱정 마이소" 최고의 인기는 나일론 양말입니다. 질긴 것이 좋은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입니다.
상봉의 첫 장면이 지나고 2막 개시, 편지받고 울었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필두로 본격적인 취조가 시작됩니다. "일은 힘들지 않냐?" "잠자리는 편안하고?" "끼니는 잘 챙겨 먹고 있니?" "생활은 재미있니" 질문의 끝은 정해져 있습니다. "사귀는 사람은 있냐?"
부산스러움에 초연하시던 아버지, 반전을 시도합니다. "애 밥이나 챙겨먹여라" 햇밤과 홍시 그리고 삶은 옥수수파티가 벌어집니다. 누구 집에는 개가 새끼를 몇 마리 낳았고, 누가 시집을 갔고, 누가 무슨 병을 얻었다는 둥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모처럼 만의 푸근함이고 풍성함입니다.
금의환향, 이제 담뱃불만 조심하면 됩니다. 세탁소에서 빌린 양복을 원상태로 되돌려주면 이번 명절은 대성공입니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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