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할머니 우리 할머니

이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할머니께….

사랑합니다. 이 다섯 글자로만 책 한 권을 써도 모자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할머니' 하고 나지막이 불러보니, 벌써 가슴 한쪽이 뭉클해집니다. 여자보다 위대하고 엄마보다 강인한 분이십니다.

17년 전 초등학교 2학년 되던 해, 우리네 식구는 아빠의 사업실패로 뿔뿔이 흩어져야 했습니다. 아빠와 엄마는 맞벌이를 하시며, 돈을 벌어야할 상황이라서 오빤 고모댁으로 나는 외할머니댁으로 헤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내가 할머니 집으로 이사가던 날, 할아버지는 좋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7년의 열애 끝에 완강히 반대하던 결혼을 했고, 잘 살기는커녕 딸자식(엄마)을 고생시키는 게 못마땅하시고, 화가 나서 입니다. 깊게 패인 주름살에 찌푸린 인상이 제겐 무서웠습니다.

뭐라고 하실 때면 하염없이 인자하시던 할머니 치마 뒷자락에 숨어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어린 마음에 다른 친구들보다 더 빨리 성숙해지는 것이 싫었고. 환경이 다르다는 것 또한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그땐 많은 것을 바란 것도 아닌 그저 평범했던 주위의 모든 것이 내겐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나의 얼굴은 해맑게 웃고 있었지만, 마음속엔 슬픔과 그리움이 가득 차 어두웠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런 걸 모를 꺼라 생각했지만, 할머니만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다정히 말을 건네며 엄마의 빈자리를 할머니께선 넘칠 만큼 채워주셨습니다.

그 또한 나도 알고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보게 되는 부모님이 어색할 정도였습니다. 내가 잠이 들면 할머니의 투박하지만 따뜻한 손으로 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불쌍한 것, 불쌍한 것"을 되뇌시며 눈물을 훔치십니다.

나는 다 들리는데 그저 자는 척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고2가 되던 해, 아빠는 과다피로 누적과 신경성 고혈압으로 인해 그만 뇌출혈로 12시간 대수술 끝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마지막 인사도 못한 채, 아니 긴 시간 얘기조차 마주앉아 해보지 못해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늘만 원망했습니다.

그때 할머니께서는 아무 말 없이 내 몸을 꼭 껴안으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셨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사랑과 소중함을 잘 알기에 아무 문제 없이 지금 평범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이젠, 걱정입니다. 내가 받은 사랑 평생토록 갚아도 갚지 못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렇게 강인하고 건강하시던 분이 지금 편찮으십니다. 위 절제술을 받으셔서 제대로 먹지도 소화도 못 시키는걸 옆에서 보니, 가슴이 멥니다. 지금 바라는 것은 내가 빚진 사랑 갚을 때까지 활짝 핀 봄날의 꽃송이처럼 환하게 웃으시며,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당신께 바칩니다. 손녀 올림.

강민정(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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