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시간 여행

누가 머물다 간 자리일까. 격정이 쓸고 간 자리처럼 휑한 텅 빈 집에 내 마음의 소요들이 등(燈)을 들고 달려가면 그 집의 적막은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다. 아니, 부풀어 오르는 것은 그 집의 적막이 아니라 일만 개의 추억이다.

초라했던 가구들과 단출한 저녁상과 좁은 부뚜막이 잠시 달그락거리고 언젠가 불 지폈을 아궁이와, 한때 주위를 밝혔을 백열등과, 누군가 두런거리며 드나들었을 문지방이 잠시 반짝인다. 그러나 그 집의 적막은 너무 두껍고, 지친 삶을 부려놓기에 어둠이 너무 정밀하다.

이 곳에서 한 시간이면 그 집에 닿을 수 있다. 아니 천 년의 세월 건너도 닿을 수 없을지 모른다. 그 집은 추억이고 과거이고 폐허일 뿐이기 때문이다. 너무 가깝고 때로는 너무 아득해서 절벽인 시간이며 세월일 것이다.

대구 근교 한적한 산자락에, 오래된 신문지로 흙벽을 발라놓은 그 집의 댓돌 위에는 비닐봉지가 바람에 펄럭이고 자글거리는 햇빛이 한나절 앉았다 가곤 했다. 그곳을 다녀온 후로 내 무의식은 가끔씩 그 집의 빈 뜰을 기웃거린다.

이럴 때면, 온갖 나뭇잎들 흩날리는 쓸쓸한 저녁도, 생의 절벽 끝에서 내다보는 곱디고운 노을도, 가을의 깊고 환한 아침 풍경도 다만 빈 집을 배경으로 내 안에 자욱해진다. 빈 집의 구멍 난 창호지 문 안으로 심지 돋운 불빛이 잠시 새어나오기도 하고, 누군가 낡은 신발 털어 신고 쑥부쟁이며 엉겅퀴 강아지풀을 뜯고 뜰을 돌아 불쑥 튀어나올 것 같기도 하다. 빈 집의 적막과 두꺼운 어둠이 거기, 폐허 속에서 기지개를 켜면 일만 개의 추억이 동그랗게 눈을 뜨기도 한다.

어떤 뜨거운 말로 불러 봐도 격정의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추억은 다만 흔적이고 허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빈집과, 추억과, 낡아서 텅 빈 사람의 몸은 결국 등가(等價)라는 말도 성립될 수 있겠다. 상처와 꽃과 세월조차도 허구이므로 꽃 무리들 사이사이 봉긋한 봉분들도 마침내, 추억이고 허구일 것이다.

지금 멀리서, 텅 빈 뜰 나뭇가지 위에 흘러내리는 달빛이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세계의 중심으로 스며드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정신은 안테나를 세우고 그쪽으로 기울고 시간은 이 세계의 변두리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다. 당신도, 격정을 살다간 사람들의 흔적도, 그곳에 있을 것이다.

추억의 힘은 나를 설레게 하고, 추억의 힘은 나를 절벽 끝으로 내몰고, 추억의 힘은 독하디 독한 향기 같아서 내 정신의 갈피 속에 언제나 촉촉이 스며들어 있다. 이 가을, 천 년쯤 긴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당신이 만약 존재에 대한 고뇌 속에 깊숙이 빠져있다면….

송종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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