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수도산(1,316m)에서 가야산 칠불봉(1,433m)을 잇는 능선길은 많은 등산인들이 좋아하는 종주 코스 중 하나다. 특히 불꽃처럼 타오르는 가야산 정상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걷는 길은 환상 그 자체다.
가야산 정상인 칠불봉으로부터 서쪽으로 3.5km 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두리봉(1,133.4m). 수도산~가야산 능선길 산행에서 백미(白眉)로 꼽히는 곳이다. '석화성(石火星·날카로운 바위들이 늘어선 정상부의 모양새가 흡사 불꽃이 공중으로 솟는 듯하다는 뜻)'으로 일컬어지는 가야산의 진면목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데다, 두리봉에 오르는 산행기점인 개금마을에서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순박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두루봉'.
펑퍼짐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두리봉의 이름에 대한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다만 봉우리에서 사방을 둘러볼 수 있다고 해서 두리봉, 또 그 형상이 두루뭉술해서 두리봉이란 얘기가 있다. 두리봉 아래인 개금마을 주민들은 "사방을 두루 볼 수 있다고 해서 두루봉이라 한다."고 했다.
수도산에 올라 두리봉까지 종주를 하는 코스도 있지만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 개금마을에서 두리봉에 오르기로 했다. 88고속국도 가조나들목에서 내려 가조면, 가북면 소재지를 거쳐 개금마을로 향가는 길은 가을빛으로 물들었다. 고개를 숙인 벼 이삭들은 따사로운 가을 햇살에 황금빛으로 빛나고, 어느 농가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민 감나무엔 빨간 감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계절의 변화에 둔감한 도시인의 눈에도 농촌의 가을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상(上)개금마을 초입 개금분교(폐교)에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마을의 마지막 민가를 지나면서 계곡으로 접어든다. 계속 계곡을 따라가도 되지만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능선으로 접어드는 길을 택했다. 처음 이 길로 산행하는 이들은 헷갈릴 수 있으나 산악회에서 매달아 놓은 리본을 따라가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능선길은 비교적 완만한 편이어서 1시간 남짓이면 두리봉 남릉 상의 평평한 곳에 오를 수 있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 사람 키 만큼 자란 산죽(山竹)을 벗삼아 걸으면 그다지 힘이 들지 않는 길이다. 고갯마루에 오른 이후부터는 왼쪽으로 길을 잡아 능선을 따라 걸으면 된다. 등산객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울창한 나무들이 산행을 방해하지만 길을 헤치며 가는 것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10여 분 정도 능선길을 따라가자 넓은 공터가 나온다. 표시로 봐서 헬기 임시착륙장이다. 이곳은 사방이 트여 있어 불꽃처럼 타오르는 가야산 정상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을의 전령사인 억새가 활짝 피었고 붉게 물든 단풍, 그리고 가야산의 아름다운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남쪽으로는 남산제일봉이 보이고, 아스라하게 펼쳐진 가야산 능선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잡목이 우거진 두리봉 정상은 얼마전 산행을 했던 단지봉처럼 흙으로 이뤄진 펑퍼짐한 봉우리. 봉우리 자체보단 주변의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게 두리봉의 매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두리봉에서 부박령을 거쳐 가야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도 있다.
하늘 아래 첫 동네, 개금마을!
두리봉 산행을 마치고 산행을 시작한 개금마을로 되돌아왔다. 거창의 동북부 해발 800m 고지 비탈면에 자리잡은 이 마을은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불리는, 거창에서도 손꼽히는 오지마을이다. 북으로는 경북 성주군과 맞닿아 있고 동으로 재를 넘으면 합천 해인사가 나온다. 개금(開金)은 옛날에 금이 많이 나와 붙여진 이름으로, 마을 주변 산에는 지금도 금광의 흔적이 있다.
20여 가구 70명 남짓한 마을 주민들은 배추, 감자 등 고랭지채소를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요즘엔 고부가가치 작물인 오미자를 주로 재배한다. 고지대에서 생산된 이 곳의 오미자는 딴 자리에서 바로 먹을 수 있을 만큼 청정하다. 개금마을의 또 다른 특산물은 마다.
마을이 자리잡은 곳이 워낙 높은 곳이다보니 개금마을엔 여름에 모기가 없다. 17세에 이 마을로 시집을 와 61년째 살고 있는 이말순(78) 할머니는 "옛날엔 두루봉에 참나무가 많아 산에서 숯을 굽기도 했다."며 "당귀 등 약초가 많아 가야산에 자주 오른다."고 했다.
청정마을로 잘 알려진 개금마을은 거창군에서도 손꼽히는 장수(長壽)마을이다. 92세인 최고령 할머니를 비롯해 80, 90대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살고 있다. 김사술(74) 할아버지는 "88세 노인도 농사를 지을 만큼 어르신들이 건강하다."며 "공기와 물이 좋고, 깨끗한 곳에서 자란 오미자와 마 등 건강식품을 많이 드시는 게 개금마을의 장수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글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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