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천억 규모 공사에 100억?…'억지춘향' 기부채납

비싼 분양가만큼 기부채납하라 → 기부채납 때문에 집값 올라간다

아파트 인·허가를 둘러싼 '기부채납' 요구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자치단체의 과도한 기부채납이 결국은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정부 차원에서 이를 금지하는 내용의 주택법을 개정하고 '단속 방침'까지 밝히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는 탓이다.

특히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고 분양가 상한제 시행으로 기부채납으로 인한 원가상승을 분양가에 전가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어려워졌으나 자치단체들의 기부채납 요구는 더욱 심해지고 있어 건설사들의 반발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상식을 넘어선 기부채납 요구.

지난해 달서구 지역 내 공장 부지를 매입해 아파트 분양을 준비중인 A사. 요즘 A사는 자포자기 상태로 사업을 추진중에 있다. 무리한 기부채납으로 적자 사업이 불가피해졌지만 엄청난 비용을 주고 토지를 매입한 탓에 사업 포기도 어려운 탓이다.

A사가 매입한 토지는 8만2천500㎡(2만 5천 평). 이중 토지 용도 변경과 교통영향평가 등 대구시의 사전 심의를 거치면서 매입가 기준 500억 원에 이르는 3만3천㎡가 기부채납 부지로 날아갔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약과. 사업 협의를 위해 찾아간 구청에서 복지관 건립부지 6천600㎡에다 연면적 3천㎡에 이르는 복지관 건물을 지어 기부 채납도록 요구한 것.

A사 관계자는 "기부 채납한 땅에 도로와 공원까지 조성하면 공사비로 최소 100억 원이 들어가며 구청 요구까지 수용하면 비용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라며 "기부 채납 금액이 전체 사업비 5천억 원의 15%에 이른다."고 밝혔다.

문제는 A사의 경우 대구시의 지루한 인·허가 공방으로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는 12월 이전에 분양이 불가능한 것.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되면 토지비에다 건축비, 가산비만 인정되는 탓에 A사가 기부채납한 땅과 공사비는 어디에서도 회수가 불가능, 결국은 100억 원 이상의 적자가 불가피하다.

북구에서 올 11월 분양을 준비중인 B사도 비슷한 처지다.

600가구 규모 아파트 분양을 준비중인 이 회사는 사업부지 10%의 땅을 기부채납하기로 했으나 구청 측에서 기부채납 부지에 2천㎡ 규모의 도서관 건물을 짓고 추가로 공원 조성을 요구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물론 구청 측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분양가 상한제 이전에 분양을 하면 분양가를 5% 이상 올려야 하며 12월 이전 승인을 받지 못하면 고스란히 적자를 떠안아야 한다.

◆법보다 무서운 공무원의 말

기부채납의 심각성은 위의 두 사례가 일반적이라는 점. 시공사나 시행사는 '공무원의 입'에 사업 흥망이 걸려있는 것이 '2007년 10월 대구의 현실'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 시나 구청에서 요구하는 기부채납 요구의 대부분은 법적 근거가 없으며 사업 주체가 행정 또는 민사 소송을 걸면 대다수가 패소할 수밖에 없는 사항이다.

사업과 관련된 시설물 설치를 위한 재원 확보를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기반시설 부담금 제도가 신설됐고 사업 부지와 관계없는 공공청사나 도로, 공원 등의 기부채납을 금지하도록 하는 주택 법(16조 5항)까지 올 1월 개정됐지만 말 그대로 '법은 법'일 뿐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대구 지역에서 500가구 규모 아파트를 지을 때 납부하는 기반시설부담은 최소 20억~30억 원에 이르며 여기에다 강요된 기부채납까지 납부하면 이중 과세를 하는 셈이다.

기부채납을 둘러싼 논란으로 몇개월째 사업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는 C사의 한 관계자는 "기부채납 근거라도 있으면 액수 흥정이 가능하지만 문제는 잣대가 없어 자치단체나 담당 공무원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며 "예산이 부족한 지자체 형편을 어느 정도 이해는 하지만 적자를 보면서까지 기부채납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따졌다.

사업 규모가 1천억 원인 C사가 요구받은 기부채납 부지와 시설물을 금액으로 따지면 70억 원이며 사업 연기로 인한 이자 부담까지 합하면 100억 원대에 이르고 있다.

대기업 건설사의 한 임원은 "기부채납은 지방 도시로 갈수록 심하며 이중 대구는 전국적으로 소문이 난 도시"라며 "시행사가 확보한 토지 매입비를 보고 도급 계약을 맺었다가 뒤늦은 기부채납 요구로 사업이 중단되거나 분양가를 올린 뒤 미분양으로 낭패를 겪는 회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편, 건설사들은 잣대 없이 특정 단지에만 요구되는 기부 채납 관행의 형평성 문제와 차량 통행이 적은 곳의 도로 건설이나 조성된 공원 옆에 또 다른 공원 부지 확보 등 불필요한 기부채납을 우선 개선돼야 할 사항으로 꼽고 있다.

◆대책 마련 나선 정부

지난 23일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건설산업연구원은 '기부채납 제도의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가졌다. 이날 공청회는 지자체의 과도한 기부 채납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취지로 열렸으며 정부는 내년에 무상귀속의 범위 등을 명확히 한 개선 방안을 법제화할 계획이다.

이날 발표에서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노동성 전문위원은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 조건으로 지자체가 사업자에게 부과하는 기부채납 부담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인.허가권자의 재량권 남용과 일탈로 판단해 '시정권고' 조치를 취했다"며 "필요 이상의 기부에 따른 비용과 사업 지연에 따른 금융 비용 등이 분양가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건설업체 50개 중 87%가 기부채납 비용을 원가에 반영한다고 답해 기반시설 설치부담이 결국 분양가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지난해 주택사업자들이 분양에 따른 인허가 조건으로 총사업비의 8.3%를 기부채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건설사들은 "중앙정부는 분양가 상한제를 만들어 분양 원가를 압박하고 지방자치단체는 사업 손익과 관계없이 기부채납을 강요하고 있다."며 "지난 7월 건교부 장관이 지방자치단체의 무리한 기부채납 단속 방침을 밝혔으나 현장에서는 전혀 개선 움직임을 찾아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재협 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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