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은 유유하고 청류하다. 남도의 들녘은 소리 없이 흐르는 그 강, 양 옆으로 뻗어 있다.
누렇게 익어 제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 벼이삭들이 바람에 날리는 한 편, 가을걷이가 한창인 들녘엔 베어낸 볏단들이 길게 드러누워 있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악양 들판은 황금빛이 찬란하다. 들 가운데 농로엔 갖은 형상의 허수아비들이 '농심의 축제'인 가을걷이를 위해 길게 도열하고 있다.
추수와 탈곡이 동시에 이뤄지는 트랙터가 너른 들을 제 집 마냥 헤집자 농심을 담는 자루마다 누런 곡식이 가득하다. 이에 질세라 두렁사이 볏섬을 나르는 경운기의 엔진소리도 덩달아 높아진다.
"올해 풍년인교" "그저 그러치라~잉"
유난히 비가 많아 수확은 예년만 못하다. 그러나 볏단을 들어 올리는 농부의 팔에 힘줄이 불끈 솟는다. 콧노래도 흥얼거린다.
#전남 구례군 문척변 죽연마을
50년도 더 됐다는 탈곡기인 '소시랑 훑개'로 농부가 벼이삭을 털어내고 있다. 전동 탈곡기로 하면 편할 텐데 굳이 원시 탈곡기를 쓰고 있다.
이유인즉 내년에 종자로 쓸 씨알 좋은 놈들을 골라내기 위해서란다. 그 옆 볕 좋은 곳에서 까칠하게 털어낸 곡식을 말리는 농부의 아내는 수줍은 듯 말이 없다.
이 수확의 철이 지나면 이들 들판에도 늦가을 스산한 바람이 불 터이다. 문득 저 먼 곳 지리산 높은 봉우리들이 성큼 섬진강변으로 달려온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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