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중산간을, 오름에 깃든 희망과 충일한 생명의 기운을 느끼려면 우선 그 들판에 홀로 서서 눈을 감아라. 문명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자기 중심의 편견을 버리고 눈, 비바람 속에서 눈물, 콧물 흘리며 가쁜 숨을 견디어 보아라. 그렇게 온몸으로 느끼려고할 때 중산간은, 오롯한 오름은 그제서야 비로소 제 마음을 열고 다가올 것이다. 태풍 오는 길목에서 나목처럼 억새처럼 흔들릴 때,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서 들꽃의 향기에 취할 때, 나무·풀·곤충·돌·이끼…, 그 모든 자연과 한 호흡으로 숨 쉴 때, 비로소 중산간 들녘 오름은 그대의 친구가 되고 그대의 스승이 된다." (사진작가 김영갑)
제주 중산간에 섰다. 바다를 건너온 바람은 한라산을 휘감아 거세게 불어댄다. 제주도에서는 구름도 빠르다.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뭉게구름으로 바뀌기도 한다. 용눈이오름은 한눈에 보기에도 나지막한 언덕에 불과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오르는 사이 호흡이 가빠졌다. 용눈이오름이든, 새별오름이든, 물영아리오름이든, 모든 제주의 오름들은 바람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제주바람이 특별해서일까.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를 듣다 보면 태풍이 몰려오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사진작가 김영갑처럼 눈을 감았다. 바람소리, 그 바람에 서걱거리는 억새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바다소리, 정신이 아득해진다. 높은 산이 아닌데도 오름에 오르면 멀리 보이는 수평선과 한라산의 위용 때문에라도 어지러워진다. 가을이 깊어가는 요즘은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밭에 눈이 멀 수도 있다.
다시 제주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중산간도로로 접어들었다. 인적 드문 도로 위에 땅거미가 내려앉자 바람도 거세졌다. 용눈이오름을 찾았다. 사진작가 김영갑 선생이 죽기 직전까지 "아직 부족하다."며 천착했던 그 오름이다. 용눈이오름은 중산간지역인 송당에서 성산읍 수산으로 가는 16번 도로 약 3㎞ 지점의 두 갈래 길에 손자봉과 이웃해 있는 오름이다.
산정부는 북동쪽의 정상봉을 중심으로 세 봉우리를 이루고, 그 안에 동·서쪽으로 다소 트여있는 타원형의 분화구가 있다. 그래선가 석양에 비치는 오름의 선이 꽤나 부드럽다. 오름의 모습은 아침, 저녁 다르고 구름에 따라 다르다. 또는 계절에 따라서도 특별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신혼여행지의 추억, 혹은 한라산 등반 외에는 남아있는 추억이 별로 없는 제주도가 '오름 산행'으로 특별하게 다가오고 있다. 오름은 '기생화산'을 부르는 제주식 표현이다. 제주도가 약 50만~200만 년 전 한라산의 화산폭발로 형성된 섬이라면 제주도 중산간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오름'은 한라산 산록에서 다발적인 화산활동인 기생화산 분출로 만들어진 작은 화산이다.
생태테마여행이 각광을 받으면서 제주도에서도 오름 탐방이 새로운 테마관광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제주오름은 각각 다양한 제주도만의 전설과 역사, 삶의 흔적들을 담고 있다. 특히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저지오름'은 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꼽히기도 했다. 제주도를 고스란히 느끼고 싶다면 한라산 등반과 제주를 일주하는 드라이브도 좋지만 제주오름을 올라보는 것은 어떨까.
제주도 중산간 곳곳에 산재하고 있는 오름 수는 368개. 그 중 능선이 아름다운 오름은 용눈이오름과 백약이오름, 아부오름, 따라비오름, 안돌오름, 새별오름 등이 손에 꼽힌다.
글·사진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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