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정호승 作 '끈'

정호승

가는 발목에 끈이 묶여

날지 못하는

오가는 행인들의 발길에 가차없이 차이는

푸른 하늘조차 내려와 도와주지 않는

해가 지도록 오직

푸드덕푸드덕거리기만 하는

한 마리

저 땅 위의

가는 발목에 끈이 묶여 오직 푸드덕푸드덕거리만 하는 새. 드넓은 창공을 눈앞에 두고 오가는 행인들의 발길에 가차없이 차이는 불쌍한 새. 뱃사람들이 장난삼아 붙잡은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가 아닌가. 커다란 흰 날개를 늠름하게 펴고 날아다니며 하늘을 주름잡던 창공의 왕자,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던 구름 위의 왕자. 그러나 속된 뱃사람들에게 붙잡혀 지상에 유배된 후에는 끝없는 야유와 모멸의 시간을 견뎌야 했으니.

새가 살아야 할 터전은 푸른 하늘. 땅으로 내려오는 순간 새는 닭이 되고 만다. '알바트로스'가 속세에 사는 "저주받은 시인"의 상징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 그러므로 가는 발목에 '끈'이 묶여 날지 못하는 이 새는 시인 자신이 아닌가. 뚱뚱한 몸집으로 저잣거리에서 주억주억 고개 숙이며 모이를 쪼는 슬픈 운명의 새.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하늘을 늠름하게 날아다니는 일보다 더 위대한 것이 땅바닥에 고개 처박고 먹이 구하는 일. 교각에 숨겨놓은 노란 부리 새끼들이 그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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