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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세상] 여성, 공포,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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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공포 영화들은 한 맺힌 여성의 복수를 그리고 있다. 최초의 한국 공포 영화라고 할 수 있을 '장화, 홍련'부터 최근의 작품 '궁녀'까지 말이다. 공포 영화의 특성이 그렇지만 스릴러 장르와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아니, 어떤 점에서 공포와 긴장감은 섞여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 나라 영화의 많은 작품들이 스릴러로 시작해 여성의 한을 발견하는 과정으로 끝난다는 사실이다. 많은 스릴러 영화들이 체제의 음모나 자기 자신의 실수로 귀결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억울하게 죽은 여성의 한이 공포의 원인이 되고 스릴러의 마지막 열쇠가 되는 이야기는 동양적이면서 또한 한국적인 것이다.

김미정 감독의 '궁녀'는 한 명의 남자를 신처럼 떠받들어야만 하는 궁녀들, 그녀들로부터 시작된다. 궁안에서 의문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일종의 히스테리 상태에 빠져든다. 히스테리는 광기를 불러일으켜 어딘가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듯한 환상을 갖게 된다. '궁녀'는 '살인 사건과 의녀'라는 추리소설적 구조 위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살인은 억울하게 죽은 궁녀의 복수로 변한다. 후궁인 동생을 대신해 아이를 낳은 쌍둥이 언니는 아이 주변을 맴돌다 결국 차지한다. 귀신으로 말이다. 겉으로 보아 이 이야기는 억울한 죽음을 맞은 여인의 복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식의 복수 스토리는 중요한 현실적 계기를 은폐한다.

그런 점에서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나 방은진 감독의 '오로라 공주'는 흥미롭다. 이 두 작품은 모두 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했던 여자들이 그 빈자리, 결핍을 메우는 행위로 진행된다. 금자(이영애)는 자신을 이용하고 범죄자로 만든 한 남자 그리고 방은진 감독의 정순정(엄정화)은 자신의 아이를 앗아간 유괴범 그리고 그들을 방치한 사회에 대해서. 그들은 판타지나 호러 혹은 초자연적 힘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어려운 상대에 맞선다. 독하고, 질기게 그들은 '적'으로 규명한 상대를 파괴해간다.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이 오래 기억에 남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장화, 홍련'은 초현실적 사건에 기대어 억압당한 여성을 고발하듯이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죄의식은 다름 아닌 여성 내부에 있음을 보여준다. 수미(임수정)는 피해자인척 했지만 실상 가해자중 한 사람이었음이 드러난다. 피해자 역할 자체가 자신의 죄책감을 씻어내는 연기이자 무대였던 셈이다. 그녀를 미치게 한 까닭은 결국 외부의 억압이 아닌 내부의 죄의식이었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런 예는 분명 소수에 불과하다. '기담', '아랑' 등의 작품은 여전히 여성이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현실의 사건을 환상이나 초현실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은 이젠 너무도 진부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사회적 약자의 언어가 반드시 초현실적 세계의 것을 빌려야만 하는 것일까? 환상을 통한 복원과 구원이 과연 현실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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