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몸이 언어가 되기도 한다. 몸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심연을 표출하고, 뱉고 나면 금새 진부한 표현이 되어 부패하기 시작하는 언어가 가진 한계를 넘어선다. 그래서 사랑하는 연인의 관계에 있어 몸으로 주고받는 감각은 그 어떤 말보다 더 절실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나 '몽상가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 그리고 이안의 작품 '색, 계'는 몸을 언어의 도구로 활용한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섹스는 농밀한 사유가 전달되는 인류의 근원적 언어로 활용된다. 외국어를 이해하듯 섹스를 충동이 아닌 메타포로 볼 때에야 이 영화의 진 면목이 모두 파악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감각의 제국'은 몸의 언어로 파편화된 이성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했던 시도의 가장 극한에 가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일본의 어느 기생이 사랑에 대한 집착으로 정부(情夫)를 교살한 뒤 그의 성기를 잘라버리는 충격적인 실화 '아베 사다' 사건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이 실화 속에서 여자는 잘린 남근을 몸 속 깊숙이 간직하고 있었다고 한다. 왜곡된 열정의 결말이라고 할 수 있을 이 작품은 오시마 나기사 감독을 통해 제국주의의 광기의 반대편에 놓인 다른 제국으로 묘사된다. 사랑하는 남자의 신체를 흡입하고자 하는 여자의 광기는 전쟁에 나가기 위해 길게 도열한 군사들과 훌륭한 데칼코마니가 된다. 열정의 통로는 다르지만 그들 모두가 미쳐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전체주의의 광기와 대비된 그들의 열정은 실제 실연 논란을 불러올만큼 파격적인 정사신으로 제시된다. 그들은 인간이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서로의 몸을 탐닉한다. 그것은 상대방을 완전히 파악해서 흡수하고자 하는 사랑의 구체적 표현이기도 하다.
한편 이 안감독의 '색, 계'는 욕망과 경계라는 다른 준거가 서로 맞부디치고 길항하는 대결의 장을 제시한다. 항일 극단원이었던 대학생 왕치아즈는 조직의 명령에 따라 제거 대상으로 지목된 친일파의 정부가 된다. 언젠가 그를 죽여야만 한다는 시한부 관계는 그녀에게 묘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폭력적으로 시작된 그들의 섹스는 그녀가 처한 상황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게다가 그 폭력성에 서서히 길들어가는 여자의 변화는 색과 경계, 적과 나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결국 왕 치아즈는 자신이 격렬하게 섹스를 나누는 상대가 적이라는 사실을 잊고 만다.
그 순간은 아주 찰나이다. 찰나의 선택으로 결국 그녀는 되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축출되고 만다. 친일파 이와 왕 치아즈의 섹스는 적지를 탐색하는 행위처럼 잔혹하면서도 격정적이다. 내면을 드러낼 수 없기에 그리고 언어로 그 감정을 중계할 수 없기에 몸의 언어는 더욱 격렬해진다.
영화 '색, 계'의 후반부, 적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쓸쓸히 봉쇄된 도로에 갇힌 왕치아즈의 모습이 쓸쓸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격렬하게 지나간 몸의 흔적 위에 이제 시간은 상실감만을 전달해준다. 몸의 언어는 기록될 수 없기에 더욱 순간적이며 한편 허무하다. '색, 계'는 이렇듯 색의 허무함까지도 감각적인 사유로 전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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