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후보가 무려 140여명.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실제 이번 17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자로 등록을 마친 사람은 지난 주까지 143명에 이르렀다. 이름이라도 한 번쯤 들어봤다는 10여명을 제외한 나머지 130명 가량은 인지도 0.1%도 안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의 꿈을 꾸며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대선 예비후보자 제도는 홍보기간이 부족한 정치 신인에게 진입 장벽을 제거해 주자는 취지로 2004년에 마련됐고 대선에 적용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예비 후보자는 국내 거주 5년 이상, 40세 이상 국민이며 누구나 등록할 수 있다. 입후보 예정자가 선거일 전 240일부터 11월 24일까지 중앙선거위원회에 신청서, 호적등본 등을 제출하면 된다.
후보자들의 면면도 흥미롭다. 목사, 승려 등 종교인부터 청소부, 역학원장, 택시기사, 미래문명학자, 주부, 연예인 등에 걸쳐 다채롭다. 경력도 화려(?)하다. 국제발명특허 획득, 주식투자 10년, 야채판매업 12년, 고시원 30년 운영, 육군만기 전역, 최다 학위수료증 보유자, 환경미화원 17년 근무, 가수 25년 등. 하지만 대부분은 '대망' 접을 듯 하다. 이달 25, 26일 기탁금 5억 원을 내야 정식 후보가 될 수 있기 때문. 물론 기탁금은 유효투표수의 15% 이상 득표시 돌려받을 수 있지만 이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최종 목적인 사람보다는 하나의 경험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들이 내거는 공약 만큼은 한번쯤 눈여겨 볼만 한다. 다소 황당한 공약도 있지만 말 그대로 서민 후보인 이들은 민심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유력 후보이건 일장춘몽에 그칠 예비 후보이건 사실 공약은 오십보 백보다. 누구나 '잘 살게 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게 마련. 한 예비후보는 202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10만 달러 달성, 새 일자리 500만 개 창출, AU(아시아연합)로 대륙국가 건설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상당히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그는 이번 대선에서 1천600만 표를 넘게 얻어 압도적 표차로 대통령이 되겠단다. 아울러 그는 상생소득세 1% 징수, 토지공개념 강화, 고리사채업 폐지를 약속했다. 아직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많겠지만 지난 97년 15대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로 TV 토론에 등장했던 허영영(60) 후보도 있다. 그는 "당선 직후 계엄령을 선포해 국회의원 전원을 사법처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에도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그도 1인당 국민소득 10만 달러를 내걸었다. 일단 IQ 430(본인 주장)인 천재적 두뇌를 활용해 바이칼호와 캄차카반도를 매입하고, 유엔본부도 판문점으로 옮겨와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살리며, 한라산 백록담도 인공호수로 만들겠단다.
정치와 공무원 개혁을 약속한 공약도 흔히 볼 수 있다. 무명의 예비후보들 역시 기성 정치와 관료주의에 신물이 난다며 개혁을 내걸었다. 한 후보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제한하겠다고 밝혔고, 청소부로 일하는 한 후보는 "게을리 일하는 공무원을 청소해버리겠다."고 목청을 돋우기도 했다.
또 톡톡 튀는 아이디어도 돋보인다. 37명의 무소속 대통령예비후보로 구성된 '무소속 대통령예비후보연대'가 얼마 전 개최한 정책토론회에서 후보들은 통일 방안부터 복지, 경제정책, 교육문제 해법 등을 내놓았다. 몽고와 연합체를 구성하고 우즈베키스탄 등을 아우르는 신성동맹을 결성하겠다는 아이디어부터 한일해저터널을 뚫어 TCR(중국횡단철도), TSR(시베리아횡단철도)과 연결해 도쿄에서 시작해 서울과 평양, 파리, 런던에 이르는 노선을 구축하겠다는 글로벌한 공약까지 등장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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