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간제 방문간호사 연말 대량 실직사태

"홀몸노인들과 겨우 마음 텄는데…"

보건소에서 방문보건간호사로 일하는 A씨(43·여)는 요즘 직장을 떠나야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지난해 12월, 1년 계약으로 '기간제 일용직'이 된 터라 이달 말이면 계약이 해지되기 때문. 건강검진을 받게 해줘 고맙다며 두 손을 꼭 잡던 뇌성마비 1급 장애인 부부도, 그녀가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홀몸 할머니에 대한 안타까움도 이제 추억으로만 간직해야할 처지가 됐다. A씨는 "어르신들이나 형편이 어려운 장애인들과 이제야 겨우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됐는데 떠나야 해 아쉽다."고 했다.

대구시내 각 보건소에서 일하는 방문보건간호사들이 대량 실직 사태를 맞을 전망이다. 정부가 올해 4월 도입한 '맞춤형 방문건강 관리사업'에 따라 각 보건소별로 8~10명씩 방문보건간호사들을 신규 채용했지만 모두 1년짜리 '기간제 일용직'인 때문에 올 연말이면 모두 직장에서 내쫓길 형편에 놓인 것.

'맞춤형 방문건강 관리사업'은 각 구·군 보건소별로 방문간호사 등 전담인력이 직접 현장을 방문, 질병 예방활동을 펼쳐 의료 사각지대를 줄이자는 취지의 제도다. 기초생활보호대상자 중 65세 이상 홀로 사는 노인이나 노인 부부, 장애인 등이 우선 서비스 대상으로 대구에만 2만여 가구가 넘는다. 보건복지부는 보건소별로 8명 이상을 고용할 수 있도록 사업비를 지원, 신규 채용된 방문간호사는 대구에서만 80여 명, 전국적으로 2천여 명에 이른다.

문제는 이들이 비정규직이어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점. 지속적인 서비스 제공이 무엇보다 중요한 방문간호사들이 1년 동안 업무에 적응하고 대상 주민들과 친분을 쌓자마자 일을 그만둬야하는 불합리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자체가 정규직 전환과 퇴직금 부담 등을 이유로 계속 고용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1년 이상 고용할 경우 퇴직금을 부담해야 하는데다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비정규직 법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 정부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비정규직 법이 오히려 방문간호사들의 목을 죄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대구시내 한 기초단체의 경우 일단 계약해지를 한 뒤, 2, 3개월 뒤에 다시 고용하는 편법까지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행정자치부와 각 지자체에 방문간호사의 지속적인 고용을 권고했지만 각 지자체는 예산 문제를 들어 어려움을 표시하고 있다.

대구 한 보건소 관계자는 "복지부가 관련 예산을 확보하고, 행자부가 상용직 자리를 만들어주는 등 정부에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이 같은 노력이 없다."며 "인원과 사업비만 내려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식이어서 예산 부담이 큰 지자체가 이들을 계속 고용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