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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 색, 계(2007,이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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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에서 '색'(色 lust)은 성적욕망을, '계'(戒 caution)는 신중함을 뜻한다. 불안정한 시대일수록 파편적인 사랑이 주를 이루지만 넘치는 건 모자람 만 못하다는 말처럼, 넘치는 에로스의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사랑에 깊이 빠져든 주인공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잠시도 경계를 늦출 수 없고 동물적인 생존본능만이 남아있는 남자에게 사랑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구원인지도 모른다.

일본 장수를 껴안고 강물에 투신한 조선의 논개처럼, 젊음과 열정을 간직한 여대생 왕치아즈(탕웨이)는 민족의 배신자 이 선생(왕가위)을 유혹해 없애버린다는 임무를 맡는다. 그러나 그녀의 거룩한 분노와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 강하지 못했다. 수많은 동족을 살상한 살인마는 예상과 달리 부드러운 음성을 지닌 왜소한 중년의 평범한 남자였던 것이다. 그는 차 한 잔의 대화를 기꺼이 즐길 줄 알고, 명나라 희곡에 실린 '천애가녀'라는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릴 만큼 감성적이었다. 연극의 예술적 매력에 빠져있던 왕치아즈는 이 선생을 죽일 수 없는 이유들에 점점 설득당하기 시작한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것처럼, 우리는 생각과는 정반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심리기전을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이라고 한다. 사랑하기에 떠난다거나, 사무치게 그립기에 원망한다는 그런 심리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 중의 하나로, 이 선생이 스쳐간 여인을 잊지 못하고, 3년 후 재회했을 때, 여인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옷을 찢으며 분노에 찬 성행위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생각이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없고 서로 감시하며 살아남아야하는 암울한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개인이 어떻게 희생돼가는 가를 보여준다.

사회체제를 떠나서 섹스, 사랑, 권력의 문제는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적 의미가 큰 주제들이다. 권력도 사랑도 모든 부조리를 해결해줄 수는 없었다. 이안 감독이 가장 강조했던 '사랑과 고통은 공존한다.'는 메시지처럼, 인간은 어둠과 밝음, 타나토스(죽음의 본능)와 에로스(성적 욕구)가 공존하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인지도 모른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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