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스타 NO! 준비된 스타 OK!'
올림픽축구대표팀의 공격수 이근호(23.대구)의 2007년 활약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박성화호의 블루칩'이라는 말이 가장 적당할 듯 하다.
이근호는 용병 스트라이커들이 독식한 2007 프로축구 K-리그 정규리그 득점 순위에서 국내 선수로는 가장 높은 8위(8골)를 기록했고, 컵 대회까지 합치면 총 10골(27경기.경기당 0.37골)을 터트려 역시 토종 공격수 가운데 최고의 득점력을 과시했다.
이근호의 활약은 그대로 올림픽대표팀의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축구 아시아지역 2차 예선과 최종 예선에서도 빛을 발했다.
이근호는 올림픽축구 2차 예선 최종전에서 감각적인 발리슛과 서커스에 가까운 공중 힐킥을 선보이면서 박성화호의 주요 득점원으로 떠올랐고, 최종예선 1차전에서도 환상적인 터닝슛으로 2경기 연속골(3골)의 주인공이 됐다.
2차 예선 초반에 처진 스트라이커로 나서면서 올림픽호 최다골을 기록한 한동원(성남.4골)보다 1골이 부족하지만 왼쪽 날개로 뛰면서 전방 스트라이커들에게 골 기회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맡아온 이근호의 골 결정력은 말 그대로 '쏘면 터진다'에 가깝다.
이근호의 활약을 '깜짝'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2년 동안 K-리그 2군 생활을 묵묵히 참아내며 자신의 기술을 닦아낸 결과라는 게 축구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2003년 축구명문 부평고 시절 각종 대회에서 최우수 선수상을 따냈지만 정작 2005년 인천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이후에는 제대로 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두 시즌 동안 정규리그 8경기에 나선 '그저 그런' 2군 선수에 불과했지만 2군리그 MVP에 뽑힌 뒤 2007년 대구FC로 이적하면서 잠재된 득점 본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2007시즌 개막전부터 선발로 나선 이근호는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그라운드를 휘저었고, 단번에 K-리그를 이끌 차세대 공격수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K-리그에서 보여준 활약은 태극마크로 이어졌고, 핌 베어벡 감독이 이끌던 올림픽대표팀의 붙박이 왼쪽 공격수로 낙점을 받기에 이르렀다.
특히 이근호는 베어벡 감독이 중도에 하차한 이후 새롭게 올림픽호의 사령탑을 맡은 박성화 감독으로부터도 새로운 평가를 받는 기쁨도 맛봤다.
이근호는 지난해 8월 22일 우즈베키스탄과 2008 베이징올림픽 최종예선 1차전에서 후반 33분 결승골을 터트리면서 박성화 감독의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한 뒤 "박 감독님과 처음 소집훈련에서 만났을 때 서먹했지만 앞으로 그러지 않을 것 같다"며 의외의 소감을 밝혔다.
이근호는 2005년 네덜란드에서 펼쳐졌던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때 박성화호의 공격수로 뽑혔지만 단 1분도 그라운드에 나설 기회를 얻지 못했다. 맘 고생이 심했을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2년이 흐른 뒤 박 감독에게 또 한번 발탁된 이근호는 짜릿한 결승골로 승리를 안겼고, 박 감독으로부터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플레이를 하면서 몸이 가벼워지고 자신감이 붙었다. 어느 쪽에 세워도 좋은 활약을 펼친다"는 찬사를 받아냈다.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백만돌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근호는 7일 시작되는 올림픽대표팀의 스페인 전지훈련에 남다른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인생에 한번 뿐인 올림픽 출전의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고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각오 또한 빼놓지 않고 있다.
이근호는 "본선무대에서 후회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하겠다"며 "K-리그에서 인정을 받은 뒤 해외진출의 꿈도 차근차근 이뤄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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