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제2의 선거혁명

4월 총선 싹쓸이文化 청산할 때…一黨 순혈주의론 지역개발 한계

땅이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조선이 천리되는 물이 없고 백리 되는 들판이 없어 거인이 태어날 수 없음을 슬퍼했다. 그는 산이 많고 평야가 적은 우리나라 지세는 유순하고 공손한 백성을 기를 수 있으나 기개가 옹졸한 것이 흠이라고 지적했다. 나라의 경영을 볼 때 마다 느끼는 아쉬움이 200여 년 전에 이미 예견됐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지난 대선 때의 어지러운 행적들이 떠올려진다. 고만고만한 그릇과 얄팍한 철학으로 천하의 주인이 되겠다는 인물들이 없지 않았다. 대선 도전에 실패한 이회창, 이인제, 손학규 씨의 경우가 연구대상으로 떠오른다. 모두가 한나라당(신한국당)과 인연을 맺었다가 당을 뛰쳐나간 사람들이다. 양 이 씨는 충남 출신으로 대권 3수생이고, 손 씨는 경기 태생이다. 이중환의 기록을 빌면 충청도 사람은 세도와 재리를 좇는 경향이 있으며, 경기도는 재물이 구차한 곳이라고 한다. 우연이긴 하지만 지난 대선 결과와 그럴 듯하게 맞아떨어지고 보니 그냥 웃어넘길 수도 없는 일이다.

이회창 씨는 대선 5개월 전 선영을 예산 명당으로 옮기는 정성을 들였음에도 아무런 효험을 보지 못했다. 이당 저당 전전하던 이인제 씨는 지지율에서 나락을 굴렀고, 손학규 씨는 범여 후보 도전에도 실패했다. 만약 그들이 경상도 출신이었다면 대선의 전개과정은 어떻게 됐을까. 이회창 씨는 새치기 출마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인제 씨나 손학규 씨 역시 딴 당을 만들거나 이웃 당을 기웃거리는 일이 없었을지 모른다. 반칙의 올가미만큼은 쓰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경상도는 우리나라 인재의 창고였다. 신라, 고려는 말 할 것도 없고 조선조 들어서도 선조 때까지 국정의 중심을 장악했다. 영천의 정몽주, 선산의 길재, 봉화의 정도전, 안동의 류성룡, 경주의 이언적 등등의 면면이 떠올려진다. 이런 전통은 해방이후에도 이어져 역대 10명의 대통령 중 이명박 당선자를 포함 경상도 출신이 6명이나 된다. 4수만에 대권 꿈을 이룬 김대중 전 대통령도 경상도 출신이었다면 진작 당선됐을 것이라는 이야기고 보면 지역과 대통령 배출은 상당한 상관성이 있어 보인다.

경상도 사람들은 꿋꿋한 기상을 특성으로 한다. 주체성이 강해 곁불을 쬐기 싫어하며, 의리와 명분을 중시한다. 그런 우직한 인성적 특성이 다수의 대통령을 성취해낸 바탕이 아닌가싶다. 물론 의리와 명분이 항상 좋은 결과만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매몰되면 시대에 뒤쳐지게 된다. 계산이 어둡고 약삭빠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구, 경북이 지난 10년 이상 침체와 답보에 빠졌던 것도 이런 기질과 무관하지 않다. '못 먹어도 고'를 부르며 호남, 친 호남 정권과 어떤 종류의 타협도 용납지 않았다. 실리에 대한 고려 없이 싹쓸이로 한나라당을 밀었다. 박근혜, 강재섭 두 한나라당 대표를 연속 배출했지만 지역은 10년 내내 찬밥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역민들은 지난 대선에서 참여정부의 국정파탄을 심판하여 이명박 후보를 압도적으로 당선시켰다. 오는 4월 9일 총선에서는 대구·경북을 침체와 무기력으로 몰아넣은 한나라당을 심판해야할 차례다. 깃발만 보고 표를 몰아줘서는 안 된다. 지역개발에 어떤 열정을 쏟았으며 어떤 성과를 보였는지 찬찬히 따져 공과를 분명히 해야 한다. 국회의원 직을 공짜로 얻은 사람들이 지역발전에 관심이 있을 리 없다. 낙선의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지역 민심을 돌아보게 만들기는 어렵다. 겸손을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한나라당 순혈주의를 타파하지 않으면 모처럼의 새 바람이 무위로 그칠지도 모른다.

지역민들은 지난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성공한 만큼 의리와 명분 때문에 특정 정당을 배척해야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회창, 이인제, 손학규 씨 등의 自欺欺人(자기기인)으로 야권이 지리멸렬이고, 선택할 정당도 마땅찮아졌지만 인물만 좋다면 누구라도 지지해줄 수 있다는 개방적 사고로 나아가야 한다. 맹목으로 치닫는 의리와 명분은 비합리 곧 지역의 낙후로 연결될 뿐이다. 그 폐단을 지난 10년간 우리는 충분히 경험해왔다. 두 번째의 선거혁명이 필요한 순간이다. 한나라당도 이런 민심을 읽고 자격을 갖춘, 경쟁력 있는 인물들을 공천해 민의의 심판에 대비해줄 것을 당부한다.

박진용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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