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억여행]설

김 무럭무럭 나는 가래떡에 설탕 찍어먹던 맛을 잊을까

'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주 많다. 까치, 색동옷, 부침개, 연날리기, 흰 가래떡 등등.

그렇다. 설엔 꼭 떡국을 먹어야 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흰 떡국을 먹어서 잡귀를 쫓았다고 한다. 즉, 설날은 모든 것이 새로 시작하는 날로 엄숙하고 청결해야 하므로 흰떡을 끓인 떡국을 먹기도 했고 또 흰 가래떡처럼 맑고 순수하게 오래 오래 살라는 장수의 의미로 먹기도 했단다.

설 아침에 받아든 떡국은 양지머리나 사골을 푹 고아서 만든 국물에 가래떡을 썰어 넣고 끓이다가 떡이 위로 떠오르면 파를 넣어 조금 더 끓여서 그릇에 담는다. 떡국에다 온갖 맛을 다 내기 위해 쇠고기 볶음, 파산적, 지단을 고명으로 얹어 떡국에다 맛깔스런 옷을 입힌다.

"나이 한 살 더 먹었으이 공부 열심히 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의젓해야 된데이" 떡국 한 그릇을 후다닥 비우기도 전에 할머니의 훈시를 반찬 삼아 먹어야 했다. 그렇게 떡국을 세 그릇까지 먹은 기억이 난다.

가래떡이 집으로 오기 전에 방앗간에는 물에 불린 쌀을 흰 보자기에 담은 대야들이 참 길고도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의 몫은 그 대야들을 지키고 서있는 거였다. 가죽 핏대에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쇠바퀴 소리가 아직 귀에 선하다. 쌀을 흰눈처럼 곱게 갈아 몇 번인가 쌀가루를 기계에다 넣으면 방앗간 집 아들은 뭉툭하고 두꺼운 나무 작대기로 오리 주둥이 같은 양철통을 땅땅 치면 마지막 하얀 가루를 몽땅 뱉어 냈다. 혹시나 쌀가루가 더 남아있지나 않을까하는 우리 의심의 눈초리를 말끔히 씻어주던 막대기였다.

그 하얀 쌀가루에 막 소금을 한 주먹 듬뿍 넣으면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찜통에서 쪄 냈다. 그 다음 쇠 구멍으로 찐쌀을 꾹꾹 밀어 넣으면 백설기 같았던 떡이 눈부시게 흰 가래떡으로 변해 아래로 뽑아져 나왔다. 아래에는 큰 대야에 물이 담겨져 있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가래떡을 물에서 끌어내어 나무판에다 올려놓고 길이를 똑같이 맞추어 무쇠 칼로 자르는 방앗간 집 큰 아들의 손이 신기해보였다. 떡 자르는 손놀림도 구경거리가 되기에 충분해서 어른들 틈에서 이리저리 고개를 빼들고 넋을 놓고 구경하기도 했다.

가래떡이 집에 도착하면 귀하디귀한 흰 설탕을 찍어 한 입 베어 물면 무엇에다 그 맛을 비교할 수 있을까. 어떤 때엔 조청에다 찍어 먹기도 하고 김치에다 싸서 먹기도 하고 그냥 먹어도 맛나던 가래떡이었다. 아마 일 년에 한번 먹는 가래떡이어서 더 맛있었는지도 모른다.

밤엔 화로에다 구워서 먹기도 하다가 딱딱하게 굳으면 동생들이랑 칼싸움하고 놀기도 했던 가래떡. 그러던 장남감이 소쿠리에 떡국으로 썰어놓으면 또 그거 하나씩 주워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동네에 놀러나갈 때 썰은 떡을 한 움큼 집어서 주머니에 넣고 나가 오물오물 먹던 그 맛과 재미에 지금도 괜시리 군침이 돈다.

요즘엔 떡 체험도 하나의 상품으로 개발되어 옛 추억을 느끼게 한다. 청주시 흥덕구 평동에는 오곡을 이용해 다양한 떡을 만드는 전통 떡 마을이 있다. 가루 낸 멥쌀을 반죽해 손으로 만드는 손 송편, 찹쌀을 쳐서 떡메로 친 뒤 쫄깃하게 맛볼 수 있는 인절미. 곱게 간 쌀에다 효모를 넣어 발효시킨 다음 천연색소로 색을 내는 방울증편 체험이 기다리고 있다.

체험을 한다고 얘기하면 미리 반죽이 준비되는데 천연색소를 넣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색을 만드는 색깔 떡이 인기가 있다.

떡틀에 기름을 바르고 대추와 버섯을 넣어 20분가량 찌면 떡을 완성시켜 집으로 가져가기도 한다. 떡 체험이 끝나면 햇살 비추는 마당에서 윷놀이, 제기차기와 같은 전통놀이도 가능하다. 쌀 반말 기준으로 재료비 3만5천원이고 체험료는 2만원이다. 문의 043)269-8305, http://pd.invil.org 김경호(아이눈체험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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