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째 선행을 계속하고 있는 '얼굴없는 천사'가 있다. 전주 노송동사무소에 매년 남몰래 돼지저금통과 현금뭉치 등을 놓고 가는 그는 "불우한 이웃에게 작은 정성을 나눌 수 있어 정말 기쁘고 행복하게 생각한다."고 쪽지를 남겼다. 태안 원유유출 사고를 진단하러 나선 외국의 전문가들은 '기적'이라는 단어를 썼다. 엄청난 인원의 자원봉사자들이 앞다퉈 나서 기름을 걷어낸 덕분이었다.
사람들은 대가가 없어도 헌혈을 하고, 불우이웃을 돕고, 해마다 연말이 되면 성금모금액을 나타내는 '사랑의 온도계'는 올라간다. 세상에는 수많은 '따스함'이 있다. 얼핏보면 모두들 무한 경쟁 속에 떠밀려 정신없이 휩쓸려가는 것 같지만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사람들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손 한번 잡아주고, 함께 그 어려움을 견뎌내려 서로의 등을 부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별반 이득이 될 것도 없고 오히려 손해를 입는 일도 부지기수이지만 기꺼이 자신을 내던진다. 왜?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
'사람은 이기적인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기적'이라는데 주저없이 동의했다. '남을 생각하기 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답이었다. 이재한(30)씨는 "작게는 도둑질에서부터 살인, 전쟁까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행해지는 악들은 수없이 많다."며 "지구상의 동물 중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번에 그렇게 많은 동족을 살육하는 것은 사람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영현(여·34)씨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위주로 행동해 놓고 뒤늦게 반성하는 경우가 많다."며 "깊은 생각없이 반사적으로 나오는 행동들이 인간의 본성 아니겠냐."고 했다.
그래서 반론을 제시했다. 세상에는 나보다 남을 위해 나누고 자신을 희생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냐고. 이에 대해 박희영(32)씨는 사회적인 규범때문이 원인이라고 풀이했다. '이기적'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상당히 고약한 뉘앙스를 풍긴다. 박 씨는 "이기적이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기 위해서 모두들 적당히 선행을 해가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냐."며 "자신이 행한 악행에 대한 면죄부 혹은 고해성사적 성격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한(30)씨 역시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을 의식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극도로 이기적인 내가 버스안에서 자리를 양보하고 봉사활동을 다녔던 것은 이타심 때문에 아니라 그렇게 보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교육을 통해 끊임없이 이기적 행동을 나쁜 것이고 남을 위한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타적 유전자가 존재한다?
일부 다른 의견도 있었다. 인간이 단순히 '이기적'이기만 해서는 이렇게 사회가 돌아갈 수 없다는 주장이다. 결국, 인간에게는 '이타적 본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의견. 조현석(45)씨는 "이타심이 없다면 이 추운 날씨에 기름 냄새가 코를 찌르는 태안에 가서 바닷바람 맞아가며 일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소영(30) 씨는 "사람에게는 '측은지심'이라는 것이 있지 않냐."며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어려운 사람을 보면 마음부터 아파오고, 여력이 된다면 어떻게든 돕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 바로 이타적인 본성 인듯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의 연구도 이런 '긍정적' 견해를 뒷받침 하는 것들이 많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는 인간은 남을 도울 때 곧 '이타심'을 발휘할 때 본능적으로 기쁨을 느낀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많은 돈을 기부할 때와 제 주머니에 넣어두는 상황을 설정한 다음 뇌의 움직임을 살펴봤더니 기부를 결심하는 순간 쾌감에 반응하는 뇌의 전전두엽 피질이 활성화됐다는 것이다. 만족과 행복은 소유보다는 나눔, 이기심보다는 이타심에서 비롯된다는 결론으로 인간은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인류에게는 '협동 메커니즘'이 새겨져 있다는 유전학자들의 가설을 뒷받침해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예일대 킬리 햄린 교수 연구팀은 이 생후 1년 미만의 신생아들을 상대로 동그라미를 도와주는 세모, 동그라미를 밀쳐내는 네모의 영상을 보여준 뒤 아기들에게 세모, 네모 중 하나를 고르도록 하자 87.5%가 세모를 골랐다는 것이다. 아기들도 남을 돕는 존재와 방해하는 존재를 자연스레 구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독일 막스플랭크 진화인류학 연구소의 펠릭스 바르네켄 연구팀은 18개월 된 유아가 책을 쌓아올리는 단순한 과제를 수행하면서 남을 돕는 동 이타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과 침팬치가 동료를 돕는 행동을 근거로 이타주의가 본성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신의 이타심은 얼마나 세상을 자라게 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이타적 행위 역시 자기 자신의 행복과 만족감을 추구하려는 이기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라고 말을 했다. 교육을 통해 남을 위해 행동하는 척(!)하는 것이 바람직한 행위라고 배워왔으며, 이렇게 행함으로써 자신이 정말 선한 존재 혹은 세상에 가치 있는 존재라고 스스로 위안하는 '자기자존감'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은 그렇게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선행을 하는 속내를 깊숙히 파고 들어가보면 결국은 자신을 위하는 '이기심'이 자리잡고 있다는 말이다.
또 사실 우리사회에는 노골적으로 '이기적인 이타심'을 드러내는 일부도 있다.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하는 거액의 기부, 돌에다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언론매체를 통해 이런 자신의 행동이 널리 알려지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이타심'이 사회를 좀 더 따뜻하게 만들고, 원활하게 돌아가게 만드는 윤활유의 역할을 한다는데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강상현(39) 씨는 "팍팍한 세상이지만 그나마 가끔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은 이타적인 행위를 하는 일부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며 "어떤 이유에서든 서로가 돕는 세상을 만들어갈 때 사회가 좀 더 발전할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강 씨는 "지금은 사회를 위해 행하고 있는 것이 없지만 언젠가는 나눔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만큼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좀 더 나아가 굳이 '순수한 이타심'과 '이기적인 이타심'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도형(37) 씨는 "부자들이 돈을 기부하고 생색 좀 내는 것을 봐준다고 해서 손해볼 것이 뭐가 있겠느냐."며 "오히려 그 '이기적인 이타심'을 부추겨서라도 더 많은 나눔이 생겨날 수 있도록 하는것이 좋겠다."고 했다.
'왜 사랑에 빠지면 착해지는가'는 책을 쓴 토르 뇌레트라네르스 "지구촌의 부유층 10억명이 하루 16센트씩만 기부하면 10억명이 굶주림을 면할 수 있다는 등 서로 베풀고 관대한 사회가 인류 생존에 더 적합하다."는 주장을 제시했다. 서로가 좀 더 쉽게 생존하기 위한 비책, 이타심. 당신은 2008년 한 해 얼마나 당신 안에 잠재된 이타심을 깨워보시겠습니까?
한윤조기자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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