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정부, 교육이 바뀐다] ③자율과 책임에 맡긴다-대학입시

이명박 정부가 교육 분야에서 지난 정부들과 가장 큰 차이를 두려는 부분은 대학입시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대입 정책의 기조를 평등과 기회균등에 두고,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정책을 추진해왔다. 교육부가 요구하는 내용을 따르지 않는 대학에는 제재를 가하겠다는 위협까지 서슴지 않았다. 대학들의 거센 반발은 피할 수 없는 일. 지난해 상반기에는 2008학년도 대입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두고 교육부와 대학들 사이에 밀고 밀리는 힘겨루기까지 벌어져 입시를 코앞에 둔 학생, 학부모들로부터 맹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대학입시에서 아예 손을 떼고 대학 자율에 맡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대학 정책 등 큰 틀의 정책 수립과 거시적 기능을 맡고, 대입 집행 업무와 세세한 전형 업무 관리 등은 대학에 넘긴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어떻게 달라지나

이명박 정부의 대학입시 자율화 로드맵에는 2009년에 대입 업무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로 이관하고 2012년 대입을 완전 자율화하는 것으로 돼 있다. 지금까지의 관행에 비춰보면 당장 2009학년도 입시부터 대학들의 자율화 시도가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지금까지 사후 제재를 해왔기 때문에 올해 교육부 방침과 어긋나는 사실이 드러나도 내년에는 제재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교협과 전국 18개 대학 입학처장들이 9일 모임에서 2009학년도 입시 내용을 최대한 빨리 수립해 발표하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교육부의 대입 업무 개입은 사실상 끝났다는 선언인 셈.

자율화의 폭은 전 범위라고 할 수 있다. 기여입학제와 본고사, 고교등급제를 금지하는 3불정책 가운데 기여입학제를 제외한 두 가지는 자연스럽게 풀릴 전망이다. 수능이나 내신 반영비율 등 세부적인 전형 방법 결정도 개별 대학의 몫이다. 대학별로 지금보다 더욱 다양한 전형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내신 반영 단계에서 출신 고교의 서열이 반영되는 등급제도 활용될 전망. 선배들의 성적에 의해 좌우되는 일종의 연좌제라거나 1, 2학년 때 성적을 뒤집을 기회가 대폭 줄어든다는 반론도 있지만 대학들의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불가피해 보인다. 이렇게 되면 특목고나 자사고, 비평준화지역 고교, 향후 설립될 자율형 사립고 등의 대입 강세는 더해지고, 결국 고교 입시 과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학교 평가, 고교 다양화 등과 맞물려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어떻게 사전 차단하느냐에 여론의 향배가 달려 있다.

수능등급제는 조기 퇴출될 운명에 놓였다. 2008학년도처럼 단독 사용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표준점수, 백분위 등과 함께 제공되면서 최저학력기준 등으로 활용되는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대학별 고사는 실시 방법과 출제 유형, 난이도 등 여러 측면에서 더욱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된다. 논술 가이드라인은 당장 폐지되지 않는다고 해도 사후 제재가 어렵기 때문에 수명이 다했다. 일부 대학들은 2009학년도 입시부터 가이드라인에 어긋나는 방법을 쓰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문제는 대학들이 고교 교육과정을 얼마나 감안하느냐다. 한준희 경명여고 교사는 "고교 운영이 대학에 의해 좌우돼서는 안 되고, 대학들이 고교를 돕겠다는 마음을 가져줘야 한다."며 "교육과정 범위 내에서 고교들이 가장 잘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그에 맞춰 대학별 고사를 치르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쏟아지는 논란에 대해 대통령직인수위는 말을 아끼고 있다. 2월 초에 수능등급제를 포함한 입시제도 전반에 대해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할 것이므로 그 전에 세부 방침이 정해질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대교협에 대입 업무를 넘기고 전형은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원칙대로라면 대학들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대학의 책무성 높이는 게 성공 관건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입 제도는 정부의 손에 좌지우지됐다. 대학들은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넘기라고 요구했지만 끊임없이 늘 외면당했다. 정부는 대학들의 책임성 부족을 탓했다. 전국의 모든 대학들이 혼란 없이 전형을 자체적으로 치르기는 어렵다며 능력을 의심하고, 편법·부정 입시가 될 우려가 있다며 도덕성을 문제 삼았다.

뒤집어 보면 대입 자율화는 대학들이 얼마나 책무성을 갖고 공평무사하게 전형을 치러내느냐에 성패가 달렸다는 얘기다. 일부 교육시민단체들은 "교육부의 제재가 심할 때도 문제 유출, 부정 입학 등의 문제가 계속 터져왔는데 이에 대한 대책 없이 대학 자율에 맡기면 엄청난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자율화에 제동을 걸고 있다. 대교협에서 그런 기능을 맡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제2의 교육부가 되리란 반발이 커 쉽지 않다. 결국 대학들 스스로 도덕성을 높이도록 유도하는 한편 부정·비리를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로 보완할 수밖에 없다.

대학들의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것도 자율화를 유지하는 중요한 요건이 된다. 9일 열린 입학처장 모임에서 자율화 시기나 논술 가이드라인 폐지 방안, 수능등급제 보완 방안 등을 두고 대학들 사이에 견해 차이를 보인 것은 좋은 사례다.

자율화 시기에 대해서는 대학들이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므로 준비되는 대로 자율을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과 고교 교육과의 연계성, 학생들의 혼란 등을 감안해 신중하게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논술고사 비중이 높은 일부 대학들은 논술 가이드라인을 당장 폐지해야 한다며 강경 입장을 내세운다. 수능등급제에 대해서도 문제가 되는 사항은 곧바로 고쳐야 한다는 주장에 맞서, 등급제를 염두에 두고 입시를 준비해온 학생들을 위해 2010학년도까지는 보완하며 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교협이 당분간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한다는 지적은 이런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위권을 싹쓸이하려는 수도권 대학들의 욕심이 노골화돼 지방대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대교협 내에서 지방대들이 입장을 모아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 김태한 경북대 학생처장은 "지방대학 숫자가 많기 때문에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제 하에 지방대학들이 단결하면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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