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교육이 과열되면서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남모르게, 남보다 빨리, 남보다 더 많이' 가르치려는 경쟁이 은연중에 생활화되어 있다. 이런 풍토에서 갑작스럽게 입시제도가 바뀌면 남보다 한참 앞서 갔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크게 충격을 받고 당황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수능 9등급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표준점수나 백분위 점수 등을 부여할 것이 확실시된다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서 희비가 엇갈리는 것이다. 수능성적표에 표준점수를 준다면 일부 명문 대학들이 정시모집에서 논술고사를 치르지 않겠다고 발표하자 논술학원들이 술렁이고, 중학교 때부터 집중적으로 논술을 준비해 온 학생과 부모님들이 허탈해 하고 있다. 남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소용이 없게 되니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차기정부의 입시제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갈팡질팡하며 답답해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들은 어느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1년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우리의 교육현실을 비판하며 예측 가능한 것은 하나도 없다며 앞길엔 안개만 자욱하다고 불평한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 어린 학생들의 장래가 달린 입시제도는 그 어떤 것보다도 사전에 예고되어야 하며 그 모든 과정이 예측 가능해야 된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않다고 해서 제도가 확정될 때까지 손 놓고 있을 필요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교과서란 운동선수에게 있어서 기본기와 같다. 기본기가 튼튼하면 예측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교과서적인 기본에 충실한 학생은 어떤 유형의 문제가 나와도 자신 있게 대처할 수 있다. 교과서는 내신, 수능, 논술 등 모든 시험의 출발점이다. 현재로서는 출제 방향이 구체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논술 공부에 힘을 소진할 겨를이 없다. 교과서의 기본 개념을 거듭 확인하고 다지면서 수능 공부에 최선을 다하면 어떤 형태의 시험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공부든 운동이든 기본기를 다듬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어떤 입시제도 하에서든지 실력 있는 학생이 피해를 보거나 손해를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늘 정보를 쫓아다니는 사람들은 작은 일에서는 일시적으로 득을 보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남보다 크게 앞서거나 큰일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는 매사에 너무 조급하다. '약삭빠른 고양이 밤눈 어둡다.'라는 속담을 생각하며 우직하게 기본에 충실하자. 전환기에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대입제도가 확정되지 않은 현 상태에서 입시를 위한 최고의 해결책은 교과서이다.
윤일현(교육평론가, 송원교육문화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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