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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관의 시와 함께] 박형준/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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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박형준

술에 취해 눈을 감고 택시 등받이에 기대어 있는데, 눈발이 등 속으로 내리는 것이었다

등이 거리에 가득 걸려 있는데, 때늦은 눈발이 등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데없이 등 속을 걸어가는 아이들이 보이는 것이었다

여우구슬을 물고 도망치는 아이들이,

등 속에서 아우성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들이 택시 차창에 희디흰 눈발로 스치는 것이었다

땅에 닿자마자 금세 녹아버리는 흰빛들이어서, 택시기사가 어깨를 흔들었을 때는 이미 하늘로 다시 올라가고 없는 것이었다

초파일 달이 차창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글쎄, 5월 중순 이즈음도 봄밤일까. 봄이라고 부르기엔 반팔 티 차림새가 좀 민망하고, 여름이라고 부르기엔 뭔가 억울한 계절. 하여간 이른 여름밤이거나 늦은 봄밤에 눈이 내렸다 치자. 거리엔 색색의 연등이 가득히 걸려있는데 거기에 눈발이 사정없이 후려친다면, 게다가 술이라도 거나하게 취했다면, 누구라도 "여우구슬을 물고 도망치는 아이들"을 만나지 않으랴.

'여우구슬'이 뭐냐고 묻는 건 지나치게 순진한 말씀. 그래도 모르겠다면 뒤져보시라, 어릴 적 간직했던 색색의 영롱한 구슬을. 술이라도 마셔야 견딜 수 있는 이 비루한 일상. 머리만 대면 곯아떨어지는 누적된 피로 사이로 잠시 찾아들었던 유년의 구슬, 취생몽사의 흰빛은 금세 사라지고…….

문득 살펴보면 눈가에 내비치는 서러운 물기. 봄도 아니고 여름도 아닌 어중간한 나이에서 문득 들여다보는 젊은 날의 몽환.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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