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기섭의 목요시조산책]오후 두 시/문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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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에 누가

맥주통을 엎질렀다

그림자 길게 누인

노곤한 가로수 아래

시간의 누런 거품들이

하수구로 흘러내리고

방치된 가건물 한 채

쑥대밭에 퍼질러 앉아

먼지 낀 콧구멍을

나팔처럼 열고 있다

도시는 낮안개 속에서

물렁물렁한

관이다

대낮의 도시 풍경입니다. 가라앉는다 생각하면 속절없이 가라앉고, 떠다닌다 생각하면 또 하염없이 떠다니는 도시. 그런 도시에 방치된 회색 인간들. 떼지어 살면서도 다들 혼자서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땅속과 땅위를 바삐 들락거리지요.

대낮부터 맥주통을 엎지른 채 가로수도 골목도 술기운에 젖었군요. 시간의 누런 거품이나 먼지 낀 콧구멍이 그런 노곤한 생존의 실상을 보여줍니다. 도시는 어쩔 수 없는 삶의 공간이지만, 그 이면을 바라보는 화자의 표정엔 사뭇 냉소가 번집니다.

시인은 의식의 지층이 참 견고해서 사물을 다잡는 시선이 매우 독특합니다. 피상을 좇는 발상을 과감히 걷어내는 신선한 비유. 그것이 이미지의 낯선 충격을 동반합니다. '도시는 낮안개 속에서/물렁물렁한/관이다' - 이 작품의 종장은 그 하나의 단초.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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