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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랑)조손 가정 꾸려가는 김윤호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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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 고통 아내, 두 손자 앞날은 어떻게…

▲ 다리를 겨우 뻗을 만큼 비좁은 과일가게 맨 안쪽방에서 할아버지와 손자의 하루는 시작되고 저문다. 책도 한권 변변히 챙겨주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은 이보다 더 답답하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 다리를 겨우 뻗을 만큼 비좁은 과일가게 맨 안쪽방에서 할아버지와 손자의 하루는 시작되고 저문다. 책도 한권 변변히 챙겨주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은 이보다 더 답답하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병마가 할퀴어 몸을 가누기 힘든 할머니와 일흔을 넘긴 할아버지, 그리고 손녀(10)와 손자(7). 네 식구가 살고 있는 과일가게에는 간판이 없었다. 2년 전까지는 '은혜청과'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지만. "2년 전에 태풍을 맞아서 부서졌어요. 새로 달려니까 돈도 없고…."

6년 전 맞은 중풍 때문에 입이 돌아간 이명옥(65) 할머니에게 김윤호(가명·71) 할아버지는 풀풀거리며 힘겹게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을 쏘여주고 있었다.

은근히 더운 초여름 날씨. 1일 낮 취재진이 찾아간 동구 신천동 이들의 집은 과일가게 겸 집이었다. 과일가게로 쓰기에도 좁아 보이는 18㎡(5평 남짓) 크기의 상점도 집도 아닌 이곳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어른 걸음으로 네댓 번이면 닿을 크기였지만 입구는 과일가게, 두 번째 공간은 할머니와 손녀의 방, 맨 안쪽은 할아버지와 손자의 방으로 갈라두고 있었다. 구석구석으로 낡은 싱크대와 살림살이들이 보였다.

이 좁은 곳이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35만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앞으로 1억원이 넘는 빚이 있기 때문이었다.

"보증금은 4년 전에 다 까먹었어요. 집세도 정부에서 나오는 돈 70만원으로 내요. 과일 팔려고 청과시장 가서 사오는데 한달에 20만~30만원 나가고. 나머지로 네 식구가 살고 있어요."

이들에게 이처럼 막대한 빚이 생긴 건 5년 전. 지금은 연락이 잘 닿지 않는 작은아들이 사업에 실패하면서부터였다. 아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명의로 돈을 끌어다 쓰기 시작했고,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더 이상 돈을 빌릴 곳이 없어 사채를 끌어 쓰다 보니 빚은 금세 눈덩이처럼 불었다.

"이게 전부 빚 갚으라는 무슨 독촉장인데. 늙은이들이 무슨 대책이 있겠어요."

할아버지는 신용정보업체가 보낸 채권추심 내용증명서를 하릴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적게는 40만원에서부터 2천600만원짜리도 언뜻 보였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했다. 이 동네에서만 40년 가까이 살았기 때문에 이웃들에게도 돈을 많이 빌렸다고 했다. 이웃들 눈치는 말할 것도 없고, 사채업자의 등쌀에 넌더리가 난다고 했다. "하루에 1만원어치 팔기도 힘든데…"라는 할아버지의 한숨은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 얘기가 나오자 노부부의 주름은 더욱 깊어졌다. 두 손자에게는 어떻게든 남들만큼이라도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무슨 일을 해서든 잘 키워야 하지 않겠느냐며 눈물을 글썽였다.

"애들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내년에는 작은놈도 학교에 들어가는데."

그 흔한 위인전 하나 볼 수 없는, 아니 책 하나 놓을 공간도 없는 집이지만 조부모는 손자들의 교육을 걱정하고 있었다. "친구집에 갔더니 책장에 책이 가득 있더라고 어린 게 말하는데 마음이 얼마나 아프던지. 내 몸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니죠."

그렇게 말하는 할머니의 건강은 사실 말이 아니었다. 중풍에 이어 5년 전 위암 수술을 받았고, 작년에는 녹내장 수술도 받았다. 지금은 방광에 이상이 생겨 소변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했다.

책상 하나 놓을 곳 없는 공간에 두 손자가 엎드려 공부하는 게 가슴 아프다는 노부부의 월셋집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큰손자가 쓰던 교과서마저 폐품으로 팔아야 할 만큼 이들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올려다본 벽에는 뻐꾸기 시계가 매달려 있었다. 언제 울었을까 싶게 거미줄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게 멈춘 지 오래인 듯했다. 네가족의 희망 시계는 언제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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