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접한 그림책은 화투 패였다. 이렇게 말하면 책을 무시하는 맹랑한 소리쯤으로 들릴까?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그 시절 아이들이 대개 그러했듯이 그림책도 형형색색의 장난감도 아기자기한 인형도 접하지 못했다. 내 고향은 하루에 고작 몇 번 툴툴거리며 지나다니는 시외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탯줄처럼 꼬불꼬불한 신작로가 대구나 도시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던 농촌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아주 시골스럽지는 않았다. 신작로 옆엔 저녁이면 담장 위로 칸나처럼 홍등을 밝히던 기생집도 있었고 바람난 총각이 저녁마다 난간에 걸터앉아 휘파람을 불던 생뚱맞은 콘크리트 다리도 있었다.
바람 빠진 타이어를 공짜로 빵빵하게 채워주던 인심 좋은 자전거 수리점도 있었고 아버지 심부름으로 주전자 들고 다녀오곤 하던 막걸리 팔던 점방도 있었다. 털레털레 오다 보면 반을 흘리고 반만 남은 그 막걸리를 어느 여름날인가? 담장 아래서 쪼그리고 앉아 몰래 주전자 주둥이로 쫄쫄 맛보던 그때…. 그 담 아래 붉게 피었던 접시꽃도 그날의 나만큼은 붉지 않았으리라. 암만 여름 뙤약볕이 정수리 위에서 이글이글 뜨거워도 그 꽃, 절대 철없이 술 냄새 풍기던 나만큼 두근두근 어지럽지도 않았으리라.
우리 집 아랫목엔 언제나 두툼한 군용담요가 사각의 책처럼 접혀있었다. 제목도 없고 저자도 없는 그 책, 할머니도 읽고 간간이 동네 사람도 읽어 왔을 그 책, 그렇게 오랜 세월 수많은 손길을 거쳐 간 그 두툼한 군용담요를 열어젖히면 거기, 알록달록한 48장의 화투패가 몬테소리 그림책보다 더 화려한 색깔로 펼쳐졌다.
세상에나! 봄여름겨울가을 경계 없이 두루두루 날마다 피어 있던 국화, 매화, 벚꽃, 난초, 목단, 홍싸리, 청싸리, 단풍은 때로 나의 식물도감이 되었고 두루미, 새, 개구리, 사슴, 멧돼지는 동물도감이 되어 주기도 했다.
할머니는 새벽마다 제일 먼저 화투 점을 치셨는데 '공산' '매조' '매화'패가 나오면 '달밤에 님 만나 꽃놀이 가겠다'고 좋아하셨고 '국화'와 '솔'이 나오면 '국수 먹을 좋은 소식' 듣겠다며 흐뭇해 하셨다. 그렇게 나는 한 줄 대사 없는 화투 패를 두장 석장 조립하시며 시보다 더 시적으로 읊조리시던 할머니의 화투 점 풀이를 들으며 자랐고, 손가락에 힘이 실리면서부터는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한권의 그림책인 양 모서리가 닳고 닳도록 그것을 만지고, 뒤집으며 놀았다.
무엇보다 거긴 서정주의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국화도 있었고 '모가지가 길어 슬픈' 노천명의 사슴도 있었다. 더욱이 고금을 초월한 황조가의 '쌍쌍이 나는 저 꾀꼬리'처럼 아름다운 매조도 있고, 황진이의 '명월이 만공산'한 달밤도 있었으니 훗날 내가 어찌 시인이 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렇듯 그 사각의 푸른 군용 담요는 나의 요람이었으며, 배밀이 옹알이 뒤집기 서기 등등 나의 모든 성장 과정을 거친 성장의 장이었다. 그래서 사람이 책이고 책이 사람이란 말이 나왔을까?
생각해보면 아랫목에 누운 백일쯤 된 아이의 일이라고는 장판 위에 축축한 세계지도 그리는 일 말고는 달리 할 일도 없던 그때, 천장에 모빌 하나 없이 볼거리라고는 누렇게 빛바랜 벽지 위 흑백사진이 달랑 전부이던 그때, 바로 그 시절 내 눈을 사로잡았던 그 현란하고도 각양각색의 화투 패야말로 오늘날 나의 이 컬러풀한 센티멘털의 모태가 되지 않았을까?
사람이 책이고 책이 사람이라면 그때 그 어린 손에 부챗살처럼 아름답게 펼쳐졌던 비 풍 초 똥 팔 삼 그 48장의 화투 패야말로 오늘날 내 시의 그 원색적이고 육감적인 상상력의 원천이었음을 어찌 고백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박이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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