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리병원' 논란, 그것이 궁금하다

#1=대기업 간부인 김모(47)씨는 매주 2번씩 대구·경북 경제자유구역 내에 있는 디스크 전문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영리법인병원인 이곳은 다른 병원에 비해 의료비가 두 배 정도 비싸지만 의료시설이 훌륭한데다 친절한 서비스가 다른 일반 병원과 비할 바가 아니다. 의료비가 워낙 높은 탓에 A생명보험사에서 내놓은 보험상품에 가입해야 했지만 별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2=암환자인 이모(46)씨는 대구의료원에서 한달에 두번씩 방사선 치료를 받는다. 변변한 민간보험조차 없어 비싼 의료비를 내야하는 영리병원에 가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다. 치료기간이 길어지면서 치료비 부담이 만만치 않지만 그나마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병원은 공공병원밖에 없다. 전문 치료시설과 의료서비스가 제공된다는 영리병원의 광고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지만 '없는 처지'를 탓할 수밖에 없다.

위 두 이야기는 현재로선 불가능한 가정이다. 그러나 내국인 영리법인병원이 활성화된다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최근 제주도특별자치도에는 영리의료법인(이하 영리병원)을 둘러싼 광풍이 불었다. 여론 조사 결과 '반대'로 결론이 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영리병원 논란은 정부의 의료 정책이 바뀌지 않는 이상 언제든지 불씨가 되살아날 수 있다. 영리병원 논란의 핵심은 무엇일까.

◆제주도 발 영리병원 논란

지난달 28일 제주도는 '국내 영리의료법인 설립'의 입법을 포기했다. 도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결과, 찬성 의견이 과반수를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주도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만 19세 이상 제주도민 1천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영리병원 찬성 38.2%, 반대 39.9%로 나타났다.

여론조사보다 더욱 증폭됐던 건 찬반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이었다. 제주도는 임시반상회를 여는 등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고, 관변단체들과 의사회, 관광업계 등에서는 주요 일간지에 광고를 내는 등 일제히 찬성 의사를 표시했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학계의 반발은 거셌다. 21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의료 민영화 및 국내 영리법인 병원 저지 제주대책위'는 "영리병원을 허용할 경우 공공보험 체계가 무너지고 건강 양극화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비판하고 전국 시민단체들과 촛불집회를 열기도 했다.

첨예했던 논란만큼이나 찬반 여론도 예상을 뒤엎었다. 지난 6월 제주도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허용 찬성이 75.4%에 이르렀지만 실제 여론조사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적어도 찬성률이 60% 이상일 것이라는 안팎의 전망이 완전히 빗나갔다.

영리병원 허용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제주도는 ▷의료기관 설립 권한 이양 ▷외국 의료기관에 대한 의약품과 의료기기 수입조건 완화 ▷제주도 내 의료기관 방송 광고 허용 등 의료분야 규제 완화를 계속 진행할 계획이기 때문. 김태환 제주도지사는 영리병원이 무산된 직후 기자회견에서 "제주의 미래를 위해 영리병원 제도는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며 "영리병원 여건이 성숙되면 충분한 토론을 거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의료 선진화 vs 의료 양극화

영리병원 허용 찬성론자들은 "현재 모든 의료기관이 다 영리를 추구하고 있으며 정도의 차이는 시장 경쟁 상황과 효과적인 규제로 조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기효 인제대 보건대학원장은 "이미 우리나라 의료 공급은 공급의 90%를 차지하는 민간부문은 물론 공공부문까지 대부분 상업화·민영화돼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현실적 토대를 기반으로 선진화된 의료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지 새로 민영화하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반박의 목소리도 높다. 우선 의료비 폭등이 우려된다. 돈벌이가 목적인 영리법인이 허용되면 '돈이 되는 환자'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제도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영리병원의 출범 초기에는 환자 유인책으로 당연지정제를 적용하겠지만 영업 손해가 생기면 '왜 영리 병원이 손해가 되는 당연지정제를 받아야 하느냐'는 이유로 헌법 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 만약 위헌 판결이 난다면 개인병원이나 비영리법인병원도 영리병원으로 옮겨가게 되고, 영리병원이 민간의료보험사와 결합하면서 결국 건강보험 제도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늘어난 본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국민들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있는 사람'은 유명한 병원에서 명망있는 의사의 진료를 받고, '없는 사람'은 경쟁력 떨어지는 병원에서 경험이 부족한 의사에게 진료를 받게된다. 의료서비스가 민간보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양극화된다는 의미다.

◆대구경북에도 영향이 있을까

만약 영리병원이 제주에서 허용된다면 이는 전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대구경북, 부산진해, 인천, 새만금 등 전국 6개 경제자유구역은 내국인 진료가 가능한 외국인 영리병원의 설립이 허용돼 있으며 국민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있다. 결국 어느 한 곳에서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형평성 논란 때문에 정부로서는 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 없는 난감한 처지가 된다.

그 여파는 대구경북 경제자유구역에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구시는 수성구 대흥동과 고모동, 이천동 일대 180만㎡에 외국종합병원과 의료기기 전문 업체가 들어서는 수성의료지구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외국의료기관의 설립요건도 외국인 투자비율 50% 이상에서 30% 이상으로 완화했다. 그러나 아직 대구시가 국내 영리병원의 설립을 추진할 계획은 없는 상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국내 영리병원이 들어서기 시작하면 유치나 설립도 고려할 수 있다는 것. 대구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경제특구 내 외국인 영리병원 외에 국내 영리병원 설립 계획은 없다"면서도 "장기적으로 국내 영리병원이 들어서게 될 것으로 보고 대내외 여건을 주시 중"이라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 영리병원이란?

현행 의료법상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주체는 의료인이나 국가, 자치단체, 비영리법인, 정부투자기관 등에 한정돼 있다. 단 경제자유구역 내에서는 외국인의 경우에만 영리법인병원이 가능하다. 민간에서 병원을 '개업'하려면 '개인병원'이나 '비영리법인'이 되어야 한다. 개인병원은 일반 사업자와 같이 영업 신고를 하고 수익에 대한 세금을 낸다. 물론 개인에 한정되기 때문에 규모가 작고 투자금도 적다. 비영리법인병원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이익이 나도 배당을 하거나 분배할 수 없고 해당 기관에만 투자를 해야한다.

비영리병원은 할 수 있는 부대 사업도 직원 복지 등 제한적이다. 규제가 많은 반면 여러가지 세제 혜택을 받는다. 개인병원의 경우 영리를 추구하기는 하지만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적용되기 때문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 행위와 의료비는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반면 영리법인병원은 일종의 '주식회사'다. 따라서 '주주의 이익'을 위한 이윤 창출을 목표로 한다. 다양한 곳에서 자본을 모을 수 있고, 투자자에게 이윤을 배분할 수 있는 형태로 운영된다. OECD 주요국 가운데 일본과 한국, 네덜란드 등이 영리병원을 금지하고 있다.

장성현기자

▨ 당연지정제란?

대한민국 국민은 태어나면서 건강보험에 자동 가입되며 어떠한 병·의원도 정당한 사유 없이 건강보험가입자에 대한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 이것이 당연지정제다. 이를 거부하는 병원은 의료법 위반으로 문을 닫거나 면허정지까지 받을 수 있다. 당연지정제는 모든 국민이 어떠한 병원에서라도 원하는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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