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간질에 걸리면 영원히 치료할 수 없다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너무 많습니다."
국내 간질 치료'연구 분야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이상도 계명대동산의료원 신경과 교수는 "간질은 비교적 치료가 쉬운 질병"이라며 "간질 치료의 최우선 과제는 간질에 대한 세상의 오해와 편견을 깨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 간질만큼 오해와 편견이 심한 질병도 드물다. 간질은 세상 사람들이 흔히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유전이나 전염, 정신 이상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뇌세포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질병이다. 전체 인구의 0.5~1%가 앓는 흔한 질병으로 소아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기도 하다.
불치병이란 말 역시 완전히 잘못 알려진 얘기다. 1990년대 이후 간질 치료 수준은 비약적 발전을 거듭해 이전 50년간 겨우 네가지에 불과했던 간질 치료 약물이 지금은 10가지 넘게 개발됐다.
이 교수는 "간질 환자 100명 가운데 약물 치료가 어려워 수술이 필요한 난치성은 겨우 20명에 불과하고, 난치성 환자 가운데 절반도 수술 치료로 완치될 수 있다"고 했다.
간질에 대한 편견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 'Out Of Shadow'(어둠 속에서 벗어나라)는 세계 유수의 간질학회와 간질협회가 벌이는 글로벌 캠페인. 대한간질학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이 교수는 "세계적으로 간질은 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환자가 가장 많은 질병 가운데 하나"라며 "병원에 가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잘못 생각하거나 간질 환자로 알려지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 간질 환자는 3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지만 병원에서 치료받는 이들은 10~15만명을 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미국같은 선진국에서 간질은 당뇨병이나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처럼 여겨지고 있고, 환자들 또한 발작이 일어날 땐 언제나 주변의 누군가가 병원으로 옮겨 치료할 수 있게 간질 마크를 달고 다니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간질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그릇된 시선은 여전히 쉽게 고쳐지지 않고 있다"며 "이 같은 현실을 깨기 위해 병명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간질이라는 병명 자체를 없애면 그 속에 담긴 그릇된 시선도 어느 정도 사라지지 않겠느냐는 것. 어떤 병명으로 바꿀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견이 있지만 병명을 바꿔 사회적 편견을 떨쳐버려야 한다는 데에는 의사와 환자 모두 공감하고 있다.
1985년부터 간질 진료를 시작한 이 교수는 1991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로 1년간 연수를 떠나 선진 간질 치료법을 연구했다. 귀국 후 92년에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이어 국내 두번째로 간질센터를 발족했고, 93년 국내 최초의 국소마취수술기법을 도입, 화제가 됐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시작한 국소마취수술기법은 환자가 깨어 있는 상태에서 뇌 안의 여러 부위 가운데 간질 유발 부위만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방법이다.
이후 96년 뉴질랜드 오타고대학 신경연구센터에서 신경생리를 공부했고, 지금은 집단 재활심리치료'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교수는 "간질이라는 병에 대한 무지도 문제지만 2,3개월에 한번씩 발작을 일으키는 환자가 단지 간질에 걸렸다는 이유로 결혼과 취업에서 불이익을 받는 사회현실이 너무 안타깝다"며 "'누구나 간질에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과 사회, 정부 기관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프로필
△1985년~현재 계명대동산의료원 교수 △91~92년 미국 위스콘신대 연수 △92년 동산의료원 동산간질센터 개소 △92년~현재 간질센터 책임교수 △96~97년 뉴질랜드 오타고대 신경과학연구센터 연구원 △2004~2005년 대한신경과학회 회장 △2005년~현재 계명대 뇌연구소장 △2007년~현재 대한간질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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