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처음을 앓는 여자 - 알츠하이머 / 최빈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처음이라는 말이

오래된 신발처럼 좋았다

맨질맨질 바닥이 다 닳을 때까지

처음이라고 고집을 부린 적 있다

천 명의 아이들이 느낄 법한 슬픔이*

처음의 밑바닥에 깜깜하게 붙어 있다는 걸

보게 된 날도 나는

처음이었다

지구의 둥근 자전이 끊임없이 나를

처음으로 옮겨 놓았다

언젠가는 정말 처음일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인사말이 끝나기도 전에

딸깍 끊어지는 전화소리를 들을 때나

돌아서기도 전에 철컥 대문이

잠기는 소리를 들을 때면 그랬다

처음을 의심하는 건 못된 습관이야

누군가 그렇게 말해 준 이후로 나는

날마다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슬픔을 맛볼 즈음엔

또 다른 사랑이 처음으로 왔다

한 처음을 생각하는 지금,

그 숱한 처음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

*폴 오스터, 「달의 궁전」

접두사 '첫'을 떠올려보자. 첫사랑, 첫날밤, 첫경험, 첫 출근, 첫나들이…… 수많은 '첫'의 연속이 인생이다. '처음'에 오는 것이 '다음'이다. 그러나 인생에는 다음이 없다. 죽음에 다음이 없듯이 인생에는 다음이 없다. 그 시간, 그 장소와 그 사람은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삶의 진실을 시인은 알츠하이머로 짚어내고 있다. 생각해보면 기억을 잃어버린 치매환자들은 '처음을 앓는' 사람. '그 숱한 처음들'을 잃어버리고 다시 처음을 앓는 사람들이다. 시인의 말을 흉내 내어 나도 중얼거려본다. 나를 설레게 만들었던 내 삶의 그 숱한 처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시인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더불어민주당의 대표 선출을 위한 순회경선이 진행 중인 가운데 8일 제주와 인천에서 김민석 후보가 정청래와 송영길 후보를 각각 47.75%의 ...
외신 보도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중국 충칭의 반도체 패키징 공장 지분 매각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여러 옵션을 자문사들과 논의 중이...
전남 광주 여수 해상에서 8일 유람용 모터보트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하여 탑승객 5명 중 2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사고 원인에...
일본에서 30대 여성이 온라인 쇼핑몰에서 대량 주문 후 반복적으로 취소하여 약 400억 원의 피해를 초래한 혐의로 체포됐다. 요시다 마유(3..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